본문 바로가기
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최고의 화제작 「기생충」, 핵가족의 묵시록을 그리다!

by 북드라망 2020. 9. 3.

최고의 화제작 「기생충」, 핵가족의 묵시록을 그리다!



* 책과 아래의 소개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본 이후 책을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2019년 개봉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2020년 오스카상까지 거머쥐면서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영화 반열에 올랐다. 대저택에 사는 부자와 반지하의 빈자, 그리고 그보다 더 지하에 사는 비인간의 경계에 몰린 이들을 그려 내며 빈부격차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뤘다는 것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다. 하지만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이 영화를 ‘핵가족’이라는 색다른 문제의식을 통해 접근한다. ‘아빠-엄마-아들-딸’이라는 ‘정상적인’ 4인 가족으로 이루어진 두 가족, 그리고 남편이 자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하의 ‘유사 핵가족’ 사이의 투쟁 속에서 감독이 ‘계급’이나 ‘빈부격차’의 문제와 함께 ‘핵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분석이다.



「괴물」, 「설국열차」, 「옥자」 그리고 「기생충」


이 책은 우선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과 「기생충」의 차이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2008년에 출간한 『이 영화를 보라』에서 ‘위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영화 「괴물」을 분석한 바 있는 고미숙은 이번 책에서도 「괴물」, 「설국열차」, 「옥자」로 이어지는 봉준호 영화의 특징을 포착해 낸다. 「기생충」 이전의 이 영화들에서는 모두 새로운 관계의 구성과 희망의 메시지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 「괴물」에서는 여중생 딸이 희생되지만 떠돌이 소년과 강두(송강호 분)가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고, 「설국열차」에서는 역시 요나(고아성 분)가 머리칸에 갇혀 기계를 수리하던 소년을 구해 열차의 옆으로 빠져 나와 새로운 세상으로 나선다. 「옥자」에서도 역시 새끼 돼지 한 마리를 구해 내 산골로 돌아오면서 암울한 현실에도 실낱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생충」에서는 이런 실낱같은 희망조차 사라진다. 「기생충」에는 외부와 관계 맺지 못하는 핵가족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으로 고려되었던 ‘데칼코마니’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반지하에 사는 김기사(송강호 분)네와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이선균 분)네 모두 ‘아빠-엄마-아들-딸’이라는 대칭적 구조를 보여 준다. 하지만 이러한 대칭적 구성은 지하의 문광 씨 부부로 인해 흔들리게 되는데, 이 부부 역시 남편이 자녀의 역할까지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 ‘핵가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핵가족 간의 투쟁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에서 계급적 연대, 비슷한 처지에 대한 공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계층이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밟고 ‘치워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봉준호 감독은 우리 사회의 이런 섬뜩한 측면을 세 가족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폐쇄회로에서 탈출하기


평소에는 무기력하지만, 누군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지면 기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가족 간에 하는 일이라고는 돈 이야기와 먹고 마시는 일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 그 반대편에는 타자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선을 넘어오는 것에 대한 짜증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쇼핑과 이벤트로만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두 가족의 욕망 모두 ‘핵가족의 폐쇄회로’에 갇혔다는 점에서 지하의 문광 씨(이정은 분) 부부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폐쇄회로에서 탈출할 것인가? 지은이는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에서 ‘출구 없음’, ‘대안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생명의 연대로서의 가족’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우선 ‘계획’을 버려야 한다는 것. 동생이 죽고 아버지가 실종되는 엄청난 사건을 겪고도 아들 기우는 똑같은 욕망의 궤도에 들어선다. 그 집을 사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 또 누군가에게 사기를 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계획이다. 가족이 죽음을 당하고, 살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성찰도 없는 이 장면을 분석하면서 저자 고미숙은 가족의 이익과 서로에 대한 집착만을 증대시키는 ‘계획’이 아닌 ‘생명 차원의 연대의 장’으로 가족을 변화시킬 것, 그리하여 가족의 구성원들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응원해 주는 관계’로 새롭게 가족의 윤리를 구성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