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다른 아빠의 탄생

[아마도 이런 아빠] 허세의 끝은 어디인가?

by 북드라망 2019. 5. 3.

허세의 끝은 어디인가?



한 사람의 남편이 된 지도,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아이가 조금씩 커가며 난 청년에서 중년이 되었다. 앞으로 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렵게 꺼낸 어린 시절 기억부터 아내와의 관계, 이제는 열 살이 된 아이와의  관계를 글로 정리하는 일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매우 즐거웠다. 아프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해야 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었는지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삶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 수 있었다.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다.




아들이 맘마, 엄마, 아빠라는 말을 넘어서서 어느 정도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시작하던 무렵이다. 매주 일요일 아침에 함께 목욕탕에 가곤 했었다.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상체에 화려하게 잉어와 용을 그린 아저씨가 들어와서 옆에 앉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은 나에게 큰 소리로 “저 아저씨 등이랑 배에 그림 그렸어요.”, “무슨 그림이에요?, 예쁘다. 나도 그리고 싶어요.”등 문신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아저씨에게 충분히 들릴 목소리로. 난 당황스러운 얼굴로 문신 아저씨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화려한 문신과 달리 선한 얼굴을 가진 아저씨도 당황스러운 듯 허허 웃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만난 선한 얼굴의 아저씨가 잉어와 용을 문신으로 새긴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그 분의 직업이 건달이라면? 아마도 겁이 나서가 아닐까? 송강호가  주연했던 ‘우아한 세계’라는 영화에서 ‘조폭’은 멋들어진 싸움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사나이의 의리를 지키는 존재가 아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상을 힘겹고 찌질하게 살아간다. 폭력의 험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만큼 강한 힘과 자신감이 있다면 문신을 새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감추고 강한 자로 보이고 싶은 두려운 마음의 실천이 용 문신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조폭들의 문신을 ‘허세’라로 이름 붙인다면, 거의 반백 년이 다 되어가는 내 인생도 마찬가지로 허세로 점철되어 있다. 그것도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허세의 무한반복이다. 


잊고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니, 허세의 시작은 아마도 사춘기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당시 소위 강남이지만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은 도곡동, 개포동 근처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공인중개사 자격을 따고 부동산을 운영하시며 개발 붐에 힘입어 나름 괜찮은 수입을 얻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10여 년 넘게 부동산 중개도 하고, 그렇게 떼돈을 번다는 요즘 소위 ‘디벨로퍼’라 부르는 부동산 개발 시행사 일도 하셨지만 집안의 경제적 사정은 썩 좋지 않았다. ‘강남’이라 불리는 곳에 20여 년 가까이 살았지만 번듯한 아파트 하나를 장만 못했던 아버지의 삶은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다.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월급쟁이였다. 아마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해서 받은 월급을 재형저축으로 불리고 택지 개발 지구에 분양 받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신학기가 되고 현대, 경남, 한신 등의 이름이 붙은 친구들 집에 놀러갔다 오면 주눅이 들었다. 전형적인 중산층의 안정적인 삶을 살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반지하부터 옥탑까지 다양한 셋집을 경험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새로 사귄 친구들을 한 번도 집에 데려와 놀았던 적이 없다. 가난한 집을 보여주기에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이었다. 친구들에게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나도 비슷한 경제적 수준이야’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아내는 나와 처음 만나 사귈 때 항상 말 모양 마크가 가슴팍에 새겨진 셔츠와 엉덩이에 물음표나 말 두 마리 그림이 그려진 청바지를 사는 나를 신기해하면서 놀렸다. 난 지하상가에서 싼 옷을 사 입는 아내에게 "오빤 강남스타일이라 그렇다"고 허세를 부렸다. 쓰고 보니 좀 웃프지만, 사춘기 소년의 가난함을 감추고 싶었던 열등감이 친구들을 따라 ‘소비’하는 허세를 낳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고 철없는 생각이지만 가난하다고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기 싫었던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 허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대학 입학 후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은 몇 되지 않는다. 친구라며 지내던 녀석들은 20대 후반이 되어서 보니 사실 나와는 다른 수저를 물고 있었다. 함께 단과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던 친구들의 회사원 아니면 공무원이던 아버지들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보니 대기업 임원이 되어 있었고, 장관에 부총리에 정말 화려했다. 진학한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친구들은 유학을 갔고, 돌아와서는 아버지의 뒷배경으로 좋은 직장을 골라서 다닌다는 소문도 들었었다. 물론 모든 친구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은행이나 대기업의 채용비리 문제는 20여 년 전에도 분명 있었다. 쉽게 삶이 풀려가는 몇몇 친구들을 보면서 좌절감을 느꼈다. 이 좌절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삶이 저들보다 낮은 사회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혼을 하면서도 아무런 경제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부모님을 원망하며 좌절했었다. 억 단위의 돈을 받아 아무 걱정없이 살 집을 마련해 결혼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마찬가지로 궁핍한 삶을 힘겹게 살아가야 할 내 미래에 대한 짜증과 두려움이 날 좌절케 했다. 20대 후반에 취직한 후 아무리 월급을 받아서 모아봐야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 삶은 별 뾰족한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20대의 좌절 이후의 허세는 모순된 두 가지 방향으로 다르게 이어졌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기’였다. 어차피 직장 생활을 해봐야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별다른 답이 없어 보였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아봐야 이전 베이비붐 세대처럼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난 내세울 아무런 뒷배경도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인정받는 일을 해 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더 스웩 넘치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정치과정과 계급문제의 상관성에 대한 논문을 써서 정당의 연구소 같은 데서 일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을 왜 공부하는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멋있게 보일까를 고민했던 허세에 빠져 있었다. 




다른 하나의 허세는 대학원을 그만두고 학원 강사를 하면서 생긴 ‘나는 돈 잘 버는 사람’으로 보이기다.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학원 강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학원 강사란 사회에서 가장 불필요한 존재다. 더 나아가 사회의 정상적 발전을 위해서는 사라져야 할 암적 존재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니 남는 건 미국 래퍼들처럼 돈 자랑 하는 일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나 번다고. 자랑할 만큼 돈이 쌓여 있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학원 강사를 하지만 돈을 잘 벌어 이렇게 살고 있다고 스웩뿜뿜 하고 싶었다. 허세의 절정기였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사는 나에 대한 보상이라며 값비싼 수입차를 대출받아 사버렸다. 그렇다고 허세 넘치고 호기있게 지른 것도 아니고, 돈을 막 써 본 것도 아니다. 허세를 부리면서도 물 위를 노니는 오리가 바쁘게 발을 움직이듯 통장에 얼마가 남아있는지 셈을 했다. 차를 살 때도 단 돈 몇 만원 아껴 보자고 전국의 자동차 딜러들과 연락했다. 보증기간이 끝나 수리를 할 때 들어가는 비싼 돈이 아까워 부품을 인터넷으로 구해 공구를 쥐고 바닥을 뒹군다. 출고한지 5년 된 차를 아직도 물신으로 숭배하며 아끼고 있지만 약발은 많이 떨어졌다. 허세를 위한 소비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뭔가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비에 찌든 내 삶을 순식간에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아내에 기대 또 다른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아내는 인문학 공동체인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인문학 공부라. 얼마나 고상하고 있어 보이는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소비문화에서 벗어나는 가치들을 함께 공부하고 활동으로 풀어내다니. 소비로 허세를 부리던 내가 그 속으로 풍덩 들어가기는 어려웠지만, 아내의 활동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겠다는 허세를 부릴 때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대안적 가치를 만드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허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비를 통한 허세를 완전하게 버리고 살고 있지 못하다. 동시에 대안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일종의 자기만족에 빠진 허세도 부리고 있다. 소위 리무진 좌파라고 비판받는 사람들처럼 현실의 삶은 자본주의 소비문화 속에 관념적 삶은 자본주의를 벗어난 이상향에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허세 넘치는 삶을 살고 있을까? 그건 아마도 내가 욕심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난 양손에 사탕을 쥐고 놓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존경받는 사회적 명예와 물질적으로 부러움을 사는 상류층의 부를 함께 누리고 싶어했다. 불가능한 꿈이다. 적절한 존경과 부를 함께 얻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 기존 사회 시스템을 철저하게 벗어나 존경받고 싶었고, 동시에 최상층의 부를 누리고도 싶었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체제 안에서 인정과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스트레스만 남기고 왜곡된 허세로 이어졌다. 자 이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허세의 무한 반복을 탈출할 것인가?


최근에 읽었던 기사 하나가 허세를 벗어날 영감을 주었다. ‘고등래퍼3’의 우승자인 이영지의 인터뷰였는데, 그녀는 “딱히 내 이름을 대체할 게 없다”는 이유로 래퍼들이 쓰는 ‘랩 네임’도 만들지 않는다. “넥타이 풀어헤쳐야, 학교를 자퇴해야 힙합이다”라고 말하는 또래들에게 “어디서 배운 거야? 그런 힙합?”이라고 받아친다. 그래 허세 넘치는 힙합을 하기 위해서 학교를 착실하게 다니는 게 문제될 일은 아니지. 힙합이 중요한 것이지 학교 재학여부는 예술적 완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의 삶을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하면서 사회적 존경을 받고, 물질적 보상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매 순간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궁극의 허세가 아닐까?


앞으로의 삶의 방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장남’이라고 대우받으며 살아서 그런지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게다가 폭포 밑에서 여유롭게 목욕하는 코끼리처럼, 좋게 말하면 여유롭지만, 나쁘게 말하면 한없이 늘어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나에게 종종 군대 교관처럼 “Move! Move!"를 외친다. 느려 터지고 한없이 여유로운 내 성격에 속이 터질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귀차니즘으로도 곧 잘 이어진다. 결국 다른 사람들과 치밀한 관계를 만들어가지 못한다. 오히려 쉽고 편리하게 타인의 삶을 내 마음대로 재단하고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앞으로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일이다. 아내, 아들, 직장에서 관계맺고 있는 학생들, 동네 친구들, 어머니와 동생 등 내 주변에는 많은 마음들이 있다. 그들에게 허세로 대하려 했지 나와의 관계에서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많은 고민을 해 본적은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보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에 집중했었다. 그리고 내가 너희들보다 한 수 위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이제 벗어나자. 새로운 방식의 삶의 스웩을 만들어보자.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허세는 ‘군자’와 같은 완전한 인간으로 보여지고 싶은 사회적 허세와 중동의 ‘만수르’처럼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보이고 싶은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일단 그 중 물질적 풍족과 관련된 허세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앞으로 나의 허세는 사회적 가치에만 그 무게를 두려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이상형을 그려놓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아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존경이 달성된다면 그것만큼 쉬운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심스레 마음들을 살펴보려 한다. 자주 언쟁을 벌이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이기려 하기보다는 아내의 말을 한 번 더 곱씹어 봐야겠다. 함께 놀자는 아들의 요청을 귀찮게 여기지 않고, 뭐가 그리 재미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려 한다. 


더 나아가 내가 정말 하기 싫어하는 직업 활동에서도 두터운 관계를 만들어 보려 한다. 학생들 각자의 마음을 살피는 일은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에게 주어진 관계들인데. 아이들에게 열심히 강의를 잘 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겠다는 건 이미 틀린 일이고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허세의 방향도 아니다. 입시를 준비하며 느끼는 공포와 지루함과 허무함을 함께 이야기 하는 허세를 부리고 싶다. 포틀래치에서 선물로 허세를 부리는 추장처럼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는 자세로 허세를 부린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담당하고 있는 수백 명 학생들의 마음을 모두 다 살피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 마음이 다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들에게 다가가는지 귀신같이 안다. 나와 학생들이 서로의 마음을 잘 살피고 두터운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면 사회의 가장 불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는 직업에 대한 나의 생각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하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서 넘어서서 학생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허세를 부려보자


글_자룡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