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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아기가왔다 1

생후 280일 성장 보고서 – 키만큼 자란 취향, 체중만큼 는 눈치_엄마

by 북드라망 2018. 2. 2.

생후 280성장 보고서 

– 키만큼 자란 취향, 체중만큼 는 눈치



생후 280일은 내가 100일 다음으로 기다린 날이다. 임신 기간을 보통 280일로 잡는데(이 수치는 마지막 생리 이후부터 센 날짜로 실제 날짜는 그보다 적다고 함), 내 뱃속에서 나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기간만큼을 바깥세상에서 보내면 딸이 얼마만큼 변해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뱃속에서의 280일은 수정란이 자궁에 안착하여 엄청난 세포분열을 거쳐 신생아의 모습에 다다르는 기적 같은 시간이다. 엄마와 아빠는 지금도 딸을 보면 우리가 만나서 이런 ‘생명’이 나왔다는 것이 ‘경이롭다’는 말 외에 다른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딸은 딱 40주의 임신 기간을 채우고 세상에 나왔다(딸의 체중과 머리 크기[꽤나 커서 주치의 샘께서 ‘머리가 건강한 아기’라고 하심], 산모 나이 등을 고려해 예정일까지 나올 기미가 없자 바로 유도분만에 들어갔기 때문). 힘주는 법을 잘 모르는 엄마 때문에 나올 때 산도에 오래 끼어 있어서 다른 아기들보다 머리가 심한 꼬깔콘 모양에 쭈글쭈글한 얼굴로 ‘으애으애’ 울며 얼굴 핏줄이 사정없이 터지고 퉁퉁 부은 엄마와 역사적(?) 첫 대면을 했다.


그로부터 280일이 흘러 만9개월하고도 열흘이 지난 지금, 딸의 머리 모양은 더 이상 꼬깔콘이 아니며, 울음소리도 ‘우앙우앙’ 힘이 넘치고, 자기 의지와 자기 힘으로 집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눈치도 본다. 사실 280일 즈음의 변화에서 가장 재밌달까 ‘벌써?’ 싶은 것은 눈치를 본다는 점이다. 엄마나 아빠가 “안 돼!”라고 말한 행동을 하기 전에는 한번 우리를 슬쩍 보고 씩 웃으면서 그 행동을 시도하려 하거나, 우리가 못 본 새에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행동을 하다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화들짝 놀라며 씩 웃는 식이다. 신기한 점은 이전에 뭐라고 한 행동이 아니어도 뭔가 혼날 만한 행동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느낌으로 아는 걸까? 마치 몰래 게임이라도 하다 걸린 초등학생 같은 반응을 보이는 생후 280일 된 아기를 보게 될 줄이야.



280일의 외형 변화

: 약 24cm 성장(보통 사춘기 무렵 급성장할 때도 1년에 20cm 크면 엄청 많이 컸다고, 크느라고 뼈가 아팠다고들 하는데, 9개월간 24cm가 컸다니... 모르긴 몰라도 자라느라 꽤나 힘들고 아프기도 할 듯.)

체중 : 약 6kg 증가(먹는 양에 비해 체중은 많이 늘지 않은 편. 현재 우리 집 식구 중 가장 날씬함...;;;). 현재 약 10kg가 약간 안 될 듯(1월 초에 9.4kg였음).

피부 : 이상하게 출생 후 한두 달간은 까무잡잡했음(엄마 아빠는 모두 흰 피부). 게다가 얼굴에 태지도 잔뜩, 지루성 피부염도 귀 주변을 중심으로 꽤 있었음. 그런데 책에 나온 대로 신생아기를 벗어날 즈음에는 태지도 지루성 피부염도 사라졌고, 피부도 갈수록 뽀얘짐. 

치아 : 이가 굉장히 빨리 난 편. 보통 첫 번째 이(아래 앞니 두 개)가 생후 6~10개월에 난다는데, 4개월에서 5개월 넘어가는 시기에 났음. 지금은 무려 이가 7개(이가 날 때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침은 덤...;;).  


왼쪽은 출생 직후에 병원에서 찍은 발 스탬프, 오른쪽은 어제(2/1)찍은 발.



손과 발 : 신생아는 엄지손가락이 손 안에 들어간 형태로 주먹을 꼭 쥐고 있음(이 꼭 쥐고 있는 손을 펴보면 마치 손 안에서 실을 잣기라도 하는 듯 먼지가 실처럼 뭉쳐져 있었음;;;). 생후 3개월 즈음 손을 펴게 된다고 함. 딸도 그래서 처음엔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을 할짝거리며 빨았음. 역시 신생아의 발은 걸을 일이 전혀 없다는 걸 아는 듯 발바닥이 통통하니 볼록함. 잡고 일어서는 지금은 발바닥이 많이 평평해지기도 했고, 크기도 엄청 커짐(근데 이건 아빠 발을 꼭 닮아서 그런 것일 수도.... 이대로 아빠 발처럼 자란다면 딸은 신발[특히 구두나 샌들류]을 살 때마다 아빠를 원망할 게 분명함).




280일의 행동 변화

잡기 : 지금은 무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려는 단계에 다다랐으나, 발달해 온 과정을 보면 역시 전체적으로 손의 사용은 다른 곳보다 더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듯. 책장을 넘길 때 아직 손등을 사용하고, 핑거 푸드용으로 간식을 먹을 때도 ‘핑거’가 아니라 손 전체로 움켜잡음.

이동 : 아직 네 발 기기가 아니라 포복으로 움직임. 빠르기는 전광석화. 요즘은 엄마나 아빠를 이동 셔틀로 이용하는 횟수가 늘어남. 안아 달라고 한 이후에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는 신호를 보냄. 또 낮은 포복으로 이동하다가 눈에 띄는 방바닥의 잡티 같은 걸 보면(시력 발달) 멈춰서 앉은 다음 손으로 긁어 댐. 




지탱하기 : 생후 3개월 무렵부터 목을 가누더니 백일 며칠 후에 뒤집기를 하며 허리 힘을 기르고 8개월에 혼자 앉을 수 있을 만큼 팔-다리-허리 가누기가 됨. 9개월에는 드디어 혼자 소파를 붙잡고 일어설 정도의 다리 힘이 생김. 아직 서서 발을 떼고 이동하지는 못함. 

불기 : 최근에 익힌 능력. 딸랑이세트에 있는 나팔을 좋아하게 됨. 불어서 소리 나는 장난감에 관심을 갖더니, 이윽고 나팔을 아빠 입에 갖다 대며 어서 불어(서 날 기쁘게 해줘)라라는 단계를 지나 자기 입으로 가끔 소리를 냄. 

입에 넣기 : 뭐든지 입으로 먼저 느껴 보던 전성기는 약간 지나서 일단 탐색 시간을 가진 후 입에 넣음(보자마자 바로 넣진 않는단 얘기;;). 최근에는 거실 바닥을 맛보더니, 베란다와 거실 사이의 유리문을 할짝거림.ㅠㅠ 



280일의 감정 변화

좋고 싫은 게 분명해지고 많아짐.

좋아하는 것 : 먹는 거, 각종 끈류(전선 포함), 빨래건조대 흔들기, 엄마한테 안겨서 아빠가 웃겨 주는 거 구경하기, 책장에서 책 빼기, 아빠 타고 넘기, 각종 물건 두드리기, 까꿍놀이, 도망치기(아빠가 기어서 잡으러 오면 스피드업!), 붑바붑바놀이(입술로 붑바붑바 소리를 낸다. 하루종일.), 목욕(물속에서 첨벙거리는 것)

싫어하는 것 : 구속하는 것(유모차에 앉혀 두려고 하면 허리를 들고 다리를 굽히지 않으며 저항), 물수건으로 손이나 얼굴을 닦아주는 것, 코딱지 빼주는 것, 머리 감기

울음 : ‘싫다’ ‘별로다’ ‘마음에 안 든다’를 나타내는 말.

하지만 아직 감정의  ‘잉여’는 없다. 막 화가 나서 울고 떼쓰다가도 자기가 좋아하는 상황이 닥치면 바로 기분을 푼다. 쌓아 두는 감정이랄까, 막힌 감정이 없이 모두 그때그때 풀어내는 느낌을 딸에게 받으며 좀 놀라웠다. 분명 우리도 이랬을 텐데… 언제부터 이렇게 가슴에 머리에 심지어 뼛속에 이런 감정 저런 감정을 쌓아 두고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 건지.... 



280일 현재, 딸의 떼쓰기는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시력이 발달하면서 전보다 보이는 게 많아지니, 궁금한 것도 많아 직접 맛보고 느끼고 싶은데, 엄마 아빠는 허락을 하지 않으니 집에서 나는 눈물없는 울음소리가 잦아졌다. 더불어 안아 달라고 하는 횟수도 잦아졌는데, 막상 안으면 딸의 몸은 늘 엄마나 아빠의 팔 밖으로 4분의 3 이상은 나가 있다. 까딱 방심하면 아기가 추락할 정도로 몸을 밖으로 내던지는 이유는 물론 호기심 때문이다. 이렇게 눈을 반짝이며 온몸으로 두려움없이 호기심 대상을 향하여 돌진하는 딸을 보면,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원초적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요 며칠 또 딸은 말이 늘었다. 의미 있는 단어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뭐라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엄청 늘었고, 마치 '엄마'처럼 들리는 음절도 발음을 종종 한다.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많은가 보다. 그 말들을 또 기다린다.  

_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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