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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3

떠나자! 나를 녹슬게 하는 공부, 타인을 위한 공부로부터 자기배려와 공부 중간고사 시즌이 되면 집안은 항상 정적이 감돈다. 아이는 인강(인터넷강의)을 듣고 있고, 엄마는 그 뒤 소파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다. 아이가 자꾸 딴 짓을 했던 모양이다. 내가 아내 옆에 바싹 다가가서 “당신 꼭 여간수 같아”라고 속살대며 킬킬 거렸더니, 집사람도 쓴웃음과 함께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나도 갈수록 예민해진다. 몇 주 전 아침 식탁에서 큰 사단이 나고 말았다. 오랜만에 학업을 묻자 아이가 너무 예의 없이 대하는 것이다. 그만 나도 격해져서 순간 언성을 높였다. 급기야 생애 처음으로 아이 뺨에 손이 나가고 말았다. 놀란 아내가 아이 손을 끌고 슬피 운다. 이제 우리 사이도 살부드러운 시절을 뒤로 하고 사나워 가기만 할 것이다. 식탁 위 천장에서 내리쬐는 형광등불빛이 면구.. 2014. 4. 30.
한겨울에 읽는 8편의 소설 - 세계문학을 만나다 ② 한겨울에 읽는 8편의 소설 - 세계문학을 만나다 ② 이야기는 ‘나’를 바꾼다 토마스 핀천, 『제49호 품목의 경매』(김성곤 옮김, 민음사) 에디파는 옷장이 달린 화장실로 들어가서 재빨리 옷을 벗은 다음 가져온 옷을 가능한 한 모두 껴입었다. 갖가지 색깔의 팬티 여섯 벌, 거들, 나일론 양말 세 켤레, 브래지어 세 벌, 바지 두 벌, 하프슬립 네 벌, 검은 웃옷 한 벌, 여름 드레스 두 벌, A라인 스커트 여섯 벌, 스웨터 세 벌, 블라우스 두 벌, 누빈 실내복, 하늘색 실내복, 헐거운 올론 드레스에다 팔찌, 핀, 귀고리, 목걸이 등을 몸에 걸쳤다. 다 걸치는 데만 몇 시간은 족히 걸림 직했고, 이윽고 그녀가 그것들을 다 껴입은 후에는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전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실.. 2013. 1. 29.
지금 떨고 있니? 그럼 신문혈! 떨지 마! 우리가 있잖아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중학교 다닐 적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무척 가까웠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았을 뿐 아니라, 동네 낡은 독서실에서도 곧잘 옆자리에 앉았기에, 사실 눈 뜨고 깨어 있을 동안은 아빠, 엄마, 동생들보다 그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들끼리도 잘 아는 사이였는데, 어머니께서도 그 친구 부모님, 형, 누나들 전부 S대 출신 수재라며 그 친구랑 친하게 지내는 걸 드러내놓고 좋아하셨다. 그러나 그 시절 기억이 그 친구랑 여기 저기 싸돌아다니며 말썽피우던 장면들로 채워진 것을 보면, 어머님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친구와는 눈이 맞아도 너무 맞아서, 그 친구가 고개를 들고 눈짓만 해도 앞으로 무슨 장난을 칠지 ‘시나리오’가 팡! 하고 .. 2012.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