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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치계미를 아십니까?

by 북드라망 2013. 11. 13.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 음양을 안다는 것




뭥미(뭥米)는 알지만 치계미(雉鷄米)는 모르는 무지한 사람. 네, 바로 접니다. 흑; 아마 저처럼 치계미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 보고 갈께요~


입동의 세시풍속 가운데에는 치계미(雉鷄米)를 나누는 풍속이 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꿩과 닭과 쌀이다. 원래는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의미하는 것인데, 입동에 마을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풍속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는 겨울을 맞아 마을 노인들을 융숭히 대접하는 것이다. 몸이 가장 음(陰)한 노인들에게 겨울철 추위를 잘 견디시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절기서당』, 217~218쪽


요즘도 날이 추워지면 어르신들을 위해 연탄, 쌀 등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풍속이라고 하지는 않죠. OOO 사업, 혹은 OO 복지제도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비슷한 것 같은데, 뭐가 다를까요?


좀 딴 얘기이지만, 저는 예전에 『음양사』라는 책을 참 좋아했습니다. 헤이안 시대(794~1185)에 달력을 만들고, 천문을 관측하고, 국가적 차원의 제사를 담당하고, 요괴를 퇴치하거나 주술을 다스리는 등의 일을 했던 관직이 바로 음양사입니다. 도교가 일본으로 유입되고 뿌리 내리면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인데요, 포인트는 ‘陰과 陽의 도(道)를 깨우치면 삼라만상을 널리 통달하고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쯤 공부해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요. 만화책으로 읽었을 때에는 뭔지 몰랐던 용어들이, 음양오행에 관련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 <음양사>의 한 장면


자, 여기서 잠깐! 달력 만드는 것과 전문 관측하는 것과 요괴를 퇴치하는 것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달력은 1월부터 12월까지 숫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입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많은 달력들이 존재합니다. 얼마 전 지구의 멸망을 예견했다며 이슈가 되었던 마야력, 기억나시나요? 이집트인들이 1년의 길이를 관측해 달력을 만들었고, 이슬람 문명에서는 달의 기울기로 달력을 만들기도 하고… 알고 보면 우리가 잘 몰랐던 달력이 참 많습니다.

중국에서도 왕조가 새로 생기면 일단 달력부터 정비를 했습니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1월)을 언제로 잡을 것이냐, 이것이 중요했죠. 그래서 하나라가 1월이 정월이었다면 은나라는 2월을 정월로 삼고, 주나라는 3월을 정월로 삼는 등 이전 왕조와 ‘차별화’를 두려고 했습니다.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의 중요 업무 중 하나가 달력을 재정비하도록 하는 것이었죠. 그렇다면, 달력과 권력은 무척 밀접한 관계였다는 점이 느껴지시죠?

지금도 그렇지만 ‘때’를 안다는 것은 굉장한 힘이 됩니다. 천문 관측이 중요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혹은 『사기』를 보면 어떤 별이 갑자기 나타나서 민심이 동요했다, 혹은 기근이 발생했다와 같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미신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어떤 ‘때’의 조짐으로 읽혔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음양사들은 다른 이들보다 이러한 변화에 민감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갈공명 역시 '때'를 잘 알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음양'에 관해 이야기하면, 오해받기 딱 좋습니다. 음양은 옛 조상들의 학문 분과 중 하나였다거나, 신비로운 점술이었다거나, 어떤 종교에 속한 이야기라는 등등… 알고 보면 우리 일상에서 늘 발견하는 것인데 말이죠. '음양'이라는 한자의 기원을 살펴보면, 언덕에서 볕이 드는 양달이 양, 어두운 응달이 음이 되었다고 합니다. 양이 따로 있고, 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세상 만물에는 음/양이 공존하되 어떤 때에는 어떤 기운이 더 많이 발현된다고 본 셈이지요.


그렇기에 요즘처럼 밤의 길이가 더 길어진 시기는 1년 중 음의 기운이 더 커지는 시점인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이러한 계절의 변화와 함께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11월 7일부터 입동의 마디가 시작되었는데요, 겨울은 1년 중 음이 가장 왕성한 시기입니다. 많은 생물들이 동면을 하고, 나무는 잎을 떨구고 내년을 기약하지요. 사람들도 이 시기에는 '저장'을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겨울철에는 양기도 몸속 깊은 부위에 머무르므로 마음과 몸을 모두 조용히 쉬어야 하며, 몸을 지나치게 움직여 땀을 흘리는 것은 삼가야 한다. 만약 겨울에 땀을 흘리거나 술을 마셔서 일시적으로 양기를 증가시키면 신장이 손상된다고 했다. 겨울에 무리하면 봄에도 양기가 발동하지 않아 팔다리가 나른해지고 코피를 자주 흘리게 된다. 인생에서의 노년이 그러한 것처럼 사계절에서의 겨울은 삶의 모든 부분에 절제가 필요한 때다.


─『명랑인생 건강교본』, 293쪽


그래서 이러한 기운에 맞게 『동의보감』에서는 겨울에는 일찍 나고, 늦게 일어나길 권하지요. 그러니 겨울이 되면 봄, 여름보다 기운이 떨어지는 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1년 내내 늘 상쾌한 에너지가 솟아날 수 있겠습니까. 기운을 쥐어짜서 억지로 만들어내면, 몸에 무리가 많이 가겠지요? 그래서 겨울철 건강법이 '절제'인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음양을 안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다만 실천을 잘 못 할 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람의 인생을 음양으로 살펴보면,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장년기까지는 양의 시기에, 중년 이후는 음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절기서당』에서는 치계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두 기운의 마주침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생명에너지를 만들게 된다. 서로 따르면서 응하는 이 율동이 잘 이루어지면, 그 사이에 온기를 가진 생명에너지가 형성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 그런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치계미라는 풍속 역시 추위에 약한 노인들도 함께 겨울을 잘 버티자는 것이며 소에게 충분한 휴식과 여물을 주는 것도 동료(?)를 응원하는 것이다. (…) 이 풍속은 누구를 위한 것도,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천지의 흐르는 기의 운동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것뿐. (…) 이 추운 겨울을 버텨 내기 위해, 지금 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을 귀중하게 모셔 보자. 그 마음이 곧 우주다.


─『절기서당』, 220~221쪽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라는 목적보다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그런 사이, 그런 시기를 보냈으면 합니다. 음양을 안다는 행위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알면 보게 되고, 보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음양’에 대해 알아가며 때에 맞게, '자연스럽게' 이번 겨울을 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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