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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24절기 이야기

대설(大雪)엔 무조건 큰 눈이 내린다?

by 북드라망 2011. 12. 7.
대설(大雪), 오늘 내리는 큰 눈이 보리를 키운다

편집인

대설(大雪)은 양력으로 12월 7일이나 8일 무렵이다. 이날은 음력으로 자월(子月)이 시작되는 날이다. 해월(亥月)을 지나 자월로 접어들면서 눈이 내리고 물이 얼어붙는 등, 날씨는 점차 완연한 겨울을 향해 간다. 그러나 기운상으로는 음기가 잦아들고 오히려 양기가 생겨나고 있다. 해월이 온통 음기로 가득한 달이었다면, 자월부터는 땅속에서 양기가 움튼다. 이것은 음이 극에 이르자, 그 안에 양을 길러 다음 단계의 순환을 예비하는 이치이다. 그래서 자월은 생명의 잉태를 상징하는 달이다. …… 이 무렵은 농한기이다. 사람들은 한 해의 수확물을 가득 쌓아 두고 끼니 걱정 없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그러면서 다음 한 해, 또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안으로 양기를 길렀다.

─류시성·손영달 지음,『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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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중 21번째 절기인 대설. 큰 눈이 내린다는 데서 연원한 이름이지만, 꼭 이날에 큰 눈이 내린다기보다는 이 무렵이면 눈이 쌓일 정도로 내리고, 그 범위도 넓어진다는 의미이다. 옛말에 "대설에 눈이 많이 내리면 내년에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이는 지면의 눈이 녹을 때 토양에 수분 함유량을 증가시켜 농작물의 뿌리에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음력으로 11월에 맞는 대설에도 역시 농가에서는 월동준비가 계속되는데, 「농가월령가」의 ‘11월령’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십일월은 중동(仲冬: 겨울이 한창인 때라는 뜻으로, 음력 11월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하였던고
몇 섬은 환곡 갚고 몇 섬은 왕세(나라에 바치던 조세)하고
얼마는 제반미(제사 때 올리려고 따로 마련한 쌀)요 얼마는 씨앗이며
소작료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곗돈 장리벼를 낱낱이 청산하니
많은 듯하던 것이 나머지가 얼마 없다
그러한들 어찌할꼬 농량(농사 짓는 동안 먹을 양식)이나 아껴쓰리
콩기름 우거지로 아침은 밥 저녁은 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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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농가월령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세금을 갚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는 대목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은 세금에 괴롭다.ㅠㅠ 춘궁기에 대여 받아 추수기에 곡식을 갚던 환곡이나, 세금, 그리고 소작료 등과 내년에 농사지을 씨앗을 빼고 나면 아침엔 밥을 먹고 저녁에는 죽을 쑤어 먹으며 겨우 겨울을 난다는 말이다. 그 다음엔 부녀자들은 메주를 쑤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지금은 대기업에서 된장에 쌈장까지 모두 만들어 팔기에 된장이 ‘공산품’처럼 되었지만, 2,30년 전만 하더라도 이 맘 때면 메주 냄새 때문에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된장이나 간장을 잘 못 만드는 우리 모친 같은 분도 부지런히 메주콩을 삶고 찧어서 네모지게 만들어 방안 한쪽에 걸어 놓았었다. 대설은 메주 쑤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또 하나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그래서 생겨난 말이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다. 눈이 보리 싹을 덮어 보온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 눈이 녹으면서 토양의 영양분까지 고루 뿌리에 스며들게 하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장유(張維, 1587∼1638)는 「대설」(大雪)이라는 제목의 이런 시를 남겼다.

북풍이 눈을 몰아 하늘 가득 들이치니
온밤 내내 초가집 처마는 짓눌려 무너질 듯.
마른 나무에선 위급한 찬 소리 들리는 듯한데
작은 창에선 새벽빛 재촉하는 걸 온전히 본다.
마을 아이는 느지막이 물 긷느라 새 길을 뚫고
부엌 아낙네는 새벽밥 짓느라 어젯밤 재를 끄집어 낸다.
밭 가득 보리싹은 깊이 묻혀 얼지 않을 테니
내년 보리 수확철엔 풍년이 오겠지.

─김풍기, 『삼라만상을 열치다』에서

끝으로 눈 하니까 눈 치우기가 떠오른다.(나..나이 먹은 탓...?? ^^;;) 예전에는 눈이 쌓이면 동네 사람들이,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집집마다 나와서 골목길의 눈을 함께 치웠다. 연탄재를 가루 내어 빙판에 뿌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방송에서 내 집 앞 눈 치우기를 외쳐 대도 쌓여 있는 눈들은 그대로이다. 그것은 구청에서 해주어야 하는 일 아닌가, 라는 혹은 누군가 하겠지, 라는 혹은 내가 미끄러지지만 않는다면 내 차가 빠져 나갈 수만 있다면 별 상관없다는 무심함들이 만들어 낸 더러워진 눈 뭉텅이들이, 지금 우리 삶의 정확한 반영으로 보인다면, 너무 오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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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 - 10점
류시성.손영달 지음/북드라망
삼라만상을 열치다 - 10점
김풍기 지음/푸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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