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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소리 객소리 딴소리

[쉰소리 객소리 딴소리] 나이가 들수록 ‘좋은 귀’를 갖고 싶다

by 북드라망 2023. 9. 13.

[쉰소리 객소리 딴소리] 나이가 들수록 ‘좋은 귀’를 갖고 싶다 


누구나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걸 ‘체감’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내 경우, 그것은 나보다 나이가 많이 적은 이들과 만날 때 내가 말이 많아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가만 보니, 대여섯 살 정도의 위아래 차는 거의 동년배로, 특별히 상대와 나의 수다의 양에 차이를 못 느끼는데, 그 이상의 나이 차가 나면, 대체로, 선배와 만날 때는 내가 말하는 양이 훨씬 적고 후배와 만날 때는 내가 말하는 양이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다.(어떤 프로젝트나 일 등 공적인 업무 범위의 대화가 아니라, 사적으로 만나는 나누는 수다의 경우에 말이다.)

그리고 또 가만히 떠올려 보니, 역시 대체로, 다른 분들도 그런 경우가 많은 듯했다. 나의 왕선배님도 그 분의 선배를 만날 때보다 후배인 나를 만날 때 말씀이 훨씬 많으시지..... 어찌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다. 아무래도 위 연배보다는 아래 연배의 지인들을 만날 때 해줄 이야기도 더 많고, 더 편하고.... 뭐, 그렇지 않나. 특별히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10여 년 이상의 나이 차가 나는 연장자에게 편하게 이 얘기 저 얘기 풀어 놓기가 쉬운 건 아니겠지. 그리고 내 경우,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어서 이야기를 하시도록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경우도 사실 많다. 하지만 내가 후배님들에게 말이 많아지는 것은.... 이건 좀 거시기했다. 왜냐하면 나는 후배님들의 이야기도 선배님들 이야기 못지않게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귀보다 입을 더 열었나.  
 


생각해 보면, 내 경우, 이를테면, 선배님의 수다에서 내 경험과 다르거나 다른 생각이 있다고 해도 바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아주 의식적이진 않지만 반의식 반무의식 상태로 할 이야기를 한번 거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때 나는 ‘삼간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반무의식적으로 삼가는 상태가 연장자와 있을 때는 아무래도 장착된다. 그런데 10여 년 이상 후배 격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게 될 때는 역시 아무래도 좀 삼가는 꼭지가 풀어진다. 그래서 자꾸 후배-친구의 이야기 중에 “그건”, “그건 말이야” 이런 말이 나올 때가 많아진다. 

그래서 요즘, ‘나이가 들수록 좋은 귀를 갖고 싶다’는 바람이 하나 생겼다. 좋은 귀는, 단순히 잘 듣는 것뿐만 아니라, 잘 헤아려 듣고, 뾰족한 말도 둥글게 듣고, 부족하다 싶은 말도 끝까지 기다리며 듣는 귀다. 어쩌면 공자님이 말씀하신 ‘이순’(耳順),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이런 건 아니었을까. 아직도 ‘이순’에 대해서 여러 설이 분분하다던데. 물론 그래도 대체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모두 이해한다는 공통점은 있다고 하지만 말이다. 이기동 선생님은 “하늘의 지시가 술술 들리게 되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그것이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귀를 곤두세울 일이 없어진다”(이기동, 『논어강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3, 104쪽)고 하셨는데, 곤두세울 일이 없다는 것이 귀가 순해진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느낌이다. 

어떤 말도 이해하고 어떤 말도 거슬리지 않는다면, 그런 귀를 가진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떨지 궁금하다. 최소한 “그건~”으로 시작되지는 않겠지. ㅠㅠ 결국 꼭 필요한 말은 잘 듣는 귀에서 나온다. 
(참고로, 현대인에게 ‘듣기’ 능력을 떨어뜨리는 건 ‘나이’만이 아니다.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의 저서 『다시 책으로: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에는 스마트폰을 두 대화자의 탁자에 올려놓은 상태, 가방에 넣은 상태, 다른 방에 둔 상태에서의 대화 집중도를 본 실험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지 스마트폰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 대화의 집중도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결과를 보였다. 최소한 다른 방에 두어야 한다.;;) 

내 귀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열리기를, 더 순해지기를, 더 좋아지기를(그리고 스마트폰은 더 멀리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귀를 갖게 될수록 꼭 필요할 때만 열릴 입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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