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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약선생의 철학관

진실은 말하기 어려운 법, 왜?

by 북드라망 2012. 9. 10.

자기배려와 진실


오래전 일이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여러 곳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매일 모여서 토론하다 흩어지곤 했다. 그러나 문제들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참여자들 사이에 문제의 원인을 바라보는 입장부터가 워낙 차이가 컸다. 어떤 집단은 프로젝트 목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고, 또 어떤 집단은 인력관리에 구멍이 난 거라고 했으며, 그리고 어떤 집단은 작업 프로세스와 관리방식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해결방안은 하나로 모이지 않았고, 설사 어렵게 방안을 만들어도 실현성이 없기 일쑤였다. 결국 문제의 원인을 둘러싸고 상이한 집단 간에 격렬한 토론이 오고 갔다.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결책은 매우 상이하게 도출되고, 이를 따라서 예산, 인력, 일정 같은 중대 사안들이 한꺼번에 결정될 것이었다.

그러나 일은 여러 가지로 꼬였다. 나는 당초 목표에 다소 문제가 있긴 하지만 프로세스와 관리방식에 더 주목하고 있었다. 이를 주장하려면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비판이 불가피했다. 분명히 그들의 책임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업무 방식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잘못된 것을 바꾸어 나가도록 했다. 사실 그들은 나와 유사한 입장에 서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프로젝트 목표 자체만을 문제 삼고 목표를 낮추는 방안만 추진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나의 방식대로 사안을 바라보고 추진하면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당초 목표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식으로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 차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미세해서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목표를 낮춰버리면 당초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이유가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나는 프로젝트의 목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작업 프로세스와 관리방식을 바꾸어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래야 보다 진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원래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지들이라는 것도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내가 주장하는 진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데도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토론 속에서 나의 주장은 저들의 주장으로 쉽게 미끄러졌다. 그들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말로 사실을 훼손하는 주장을 하거나, 불가피한 상황을 화려한 미사여구로 설명하여 그것이 사실인 듯 보이게 하였다. 상황 자체가 기만적이었다. 근심은 커져가고, 해결은 요원했다. 어떤 때는 내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조차 의심스러워져 결과가 두려워지곤 했다.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상황을 종결시켜버렸으면 하는 마음까지 생기는 것이다. 이것만큼 곤혹스러운 일은 다시없었다. 대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진실이란 것이 어떤 것일까?


낮에 등불을 켜고 거리를 다녔던 디오게네스, 그가 말하고자 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쟁론술 : 모순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에는 모든 시민들에게 정치 참여가 개방되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토론과 논쟁은 개인의 지적이고 정치적인 역량인 이른바 ‘덕(aretē, 탁월함/훌륭함)’을 입증하는 수단이었다. 이렇게 되자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비판과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증대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등장한 이들이 ‘소피스테스(sophistés)들’이다. 소피스테스는 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s, BC 492 ~ BC 448) 이후 급격히 민주화된 아테네에 와서 ‘연설술(rhētorikē)’을 가르치던 일단의 직업 교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피스테스의 어원적 의미는 ‘지혜(sophia)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었다. 실제 소피스테스들은 자신들이 지혜를 가르친다고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되어지는 것은 이 말의 어원과도 맞는 듯하다. 그리스 각지에서 이런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테네로 들어와서 주로 부유한 귀족 자체들에게 여러 기술들을 가르쳤다. 대표적인 소피스테스가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였고, 에우튀데모스와 디오뉘소도로스도 이들을 이어 받아 활동했던 소피스테스들이었다. 『에우튀데모스』에서 크리톤이 외지에서 온 교사들(에우튀데모스와 디오뉘소도로스)을 보고, “그 사람들은 신종(kainos) 소피스테스인 모양이군, 또 어디서들 왔는가?”(『에우튀데모스』 271b~c)라고 다소 경멸적인 표현을 쓰는데, 아마 이미 아테네에 이런 소피스테스들이 많았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이들에 대한 일단의 관점도 형성되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고르기아스』같은 작품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상대적으로 이들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며 그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물론 소피스테스들의 주장에 문제가 많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제기한 문제 자체는 숙고해 볼만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어설프거나 근거 없고 전통을 해친다는 느낌을 가졌다. 특히 『메논』의 아뉘토스 ─ 훗날 소크라테스의 대표적인 적대적이자 주 고발자가 된다 ─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이들이 전통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잘못된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와 토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크라테스도 바로 이런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출현했기 때문에 아뉘토스와 같은 적대자들에게는 계속 소피스테스로 오인되어 취급되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이런 현상은 대단히 위험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진실이 소피스테스의 잘못된 결론에 가려질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런 기만으로 인해서 자신의 활동 자체가 소피스테스들의 철학과 동일하게 취급되면, 부당하게도 아테네 시민들에게 진실이 잘못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들과의 피상적인 동일성을 넘어서 자신이 소피스테스와 왜 다른 철학자인지를 보여 주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형제 소피스테스인 에우튀데모스(동생), 디오뉘소도로스(형)를 맞이해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던 때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였다.


나[소크라테스]는 놀라서 말했네. “그런 대단한 일(것)들[소크라테스는 바로 앞 대화에서 형제 소피스테스들이 장군의 기술, 법정의 기술 같은 대단한 것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소개했었다-인용자]이 당신들에게 부업이라면 당신들의 본업은 아마도 아름다운 것이겠군요. 부디 내게 그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말씀들 해 주십시오.” “소크라테스, 우리는 덕(aretē)을 누구보다 아름답고 빠르게 전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분이 말했네. “세상에, 정말 대단한 일(것)을 말씀하시는군요.” 내가 말했네. (『에우튀데모스』273d)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테스는 모두 ‘덕’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덕이 가르쳐질 수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지혜’나 ‘용기’는 타고난 것이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우스 같은 신의 아들만이 ‘용기’를 가질 수 있었고, 오뒷세우스나 필라메데스 같은 신의 아들만이 ‘지혜’를 가질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그런 덕목들은 타고난 것들이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피스테스는 이런 전통적인 생각을 뒤집어서 이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질문 자체가 전통과 대립되는 성격을 갖는 혁명적 사유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형제 소피스테스의 말처럼 속성 학원에서 빠른 속도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다시 말하면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테스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쉽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적대자들인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과도 달랐지만, 겉으로 혁신적인 것처럼 보였던 소피스테스들과도 입장이 달랐다. 바로 이런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야만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테스가 말하는 진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여기에 바로 소크라테스가 봉착한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네, 지혜의 상징인 올빼미가 그녀와 함께한다.


대체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덕을 전달하기에 자신들이 누구보다 아름답고 빠르게 전수할 수 있다고 한 것일까? 그들은 일단 논의에 참여하기만 하면 자신의 지혜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논변(sophisma)을 통해 자신의 지혜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피스테스의 모습을 상상하면 항상 논변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바로 이때 드러나는 기술이 ‘쟁론술(eristikē)’이다. ‘쟁론술’이라는 말은 『뤼시스』, 『에우튀데모스』, 『메논』 등에서 플라톤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말인데, 소피스테스들이 하는 논쟁의 성격을 들추어내는 말이었다. 이 기술은 말 그대로 ‘다툼(eris)을 위한 기술(technē)’, 즉 말을 가지고 싸움을 벌여서 이기려는 목적으로 구사하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형제 소피스테스를 소개할 때 “(…) 그 정도로 그 두 분은 논변(말)들로 싸우고 어떤 주장이 제기되든 논박해 치우는 데 능하게 되었네,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이 말이지”(『에우튀데모스』 272b)라고 말할 때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이 상대방을 말로 이기려는 목적으로 자신의 기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뒤이어 펼쳐지는 그들의 쟁론술이라는 것이 아주 황당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내가 말했네. “그[파트로클로스-인용자]의 아버지는 카이레데모스였고, 나의 아버지는 소프로니스코스였으니까요.”[파트로클로스와 소크라테스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인용자] “소프로니스코스와 카이레데모스는 아버지군요.” 그분이 말했네. “물론입니다. 한 분은 내 아버지요, 다른 한 분은 그의 아버지지요” 내가 말했네. “그러면 카이레데모스는 아버지와 다르지 않나요?” 그분이 말했네. “적어도 내 아버지와는 다르지요” 내가 말했네 “그렇다면 아버지와 다르다면 아버지인가요? 아니면 당신은 당신과 돌이 같다고 봅니까?” (…) “카이레데모스 역시 아버지와 다르다면 아버지가 확실히 아니군요” 그분이 말했네. “아버지가 아닌 것 같네요.”내가 말했네. “카이레데모스가 아버지인 것이 분명한 경우, 이번에는 반대로 소프로니스코스가 아버지와 다르니까 아버지가 아니군요.” 에우튀데모스가 끼어들며 말했네. “소크라테스, 그래서 당신은 아버지가 없군요.”(『에우튀데모스』297e~298b)


에우튀데모스는 소크라테스의 가계를 이용해서 논변을 펼친다. 소크라테스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하나 있는데, 그 형제의 이름은 파트로클로스이고, 그의 아버지 이름은 카이레데모스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아버지 이름은 소프로니스코스. 그런데 에우튀데모스는 각 개별자들의 아버지가 서로 다른 것은 무시하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아닌 자는 아버지가 아니다’(예를 들면 소크라테스의 아버지가 아닌 자는 아버지가 아니다)란 일견 엉뚱해 보이는 논지를 갖고 ‘소크라테스는 아버지가 없다’란 터무니없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가만히 보면 관계술어인 ‘아버지’를 이용해서 그 수식어구(‘누군가의~’)를 빼버림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결론으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버지는 분명히 누군가(특정 개별자)의 아버지일 텐데, 그 ‘누군가’(특정 개별자)를 빼버리고 그냥 ‘아버지가 없다’는 술어만 남겨놓으면서 엉뚱한 결과를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소프로니스코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가 아니다’라는 의미로 ‘소프로니스코스가 아버지가 다르니까 아버지가 아니군요’라는 부정문을 말하는데, 이로부터 ‘파트로클로스의’(혹은 ‘아버지가 다르니까’)라는 수식어구를 빼버려서 ‘소프로니스코스는 아버지가 아니다’를 도출하고,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아버지가 없다’라는 기상천외한 결론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서 이를 뒤집어 이번에는 ‘아버지인 자는 결국 모든 것의 아버지가 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에우튀데모스는 ‘그렇다’고 거꾸로─이런 태도들이 기만적인 것이다 ─ 대답하면서 다음과 같이 황당한 논변을 진행한다.


크테쉽포스가 말했네. “만약 당신의 아버지가 모두의 아버지라면 당신은 끔찍한 일(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일세.” 그분이 말했네. “사람들의 아버지입니까? 아니면 말들과 다른 모든 동물의 아버지이기도 한 것입니까?” 크테쉽포스가 말했네. “모두의 아버지지.” 그분이 말했네. “당신의 어머니도 어머니인가요?” “나의 어머니는 역시 그렇지.” “그러면 당신의 어머니는 바다 섬게의 어머니이기도 하군요.” 그가 말했네. “자네 어머니도 역시.” 그분이 말했네. “그러면 당신도 피라미와 강아지와 새끼돼지의 형제이기도 하군요.” “자네도 역시.” 그분이 말했네. “그러면 당신 아버지는 수퇘지고 개이군요.” “자네 아버지도 역시 그렇거든.” 그분이 말했네 (『에우튀데모스』298d)


결국 에우튀데모스는 크테쉽포스로 하여금 에우튀데모스의 아버지는 돼지고 개와 다를 바 없다고 일갈하게 하는데. 바로 이것을 이용해서 크레쉽포스와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개, 돼지라고 응수하면서 이 논변을 마치고 있다. 이건 참으로 기묘한 결론이다. 어떤 경로로 가더라도 개별자를 지칭하는 ‘누군가의’라는 수식어구를 빼버림으로써, 소크라테스는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 되거나, 있더라도 모두의 아버지이므로 아버지는 개, 돼지가 되는 것이다(우왕~ 여기서도 사람이 아니므니다?!).

여기서 『에우튀데모스』의 핵심 주제가 드러난다. 즉 ‘말(logos)’과 그 말이 지시하는 ‘사물(pragma)’의 올바른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다. 소피스테스들은 논변을 말의 차원에서 국한하려는 전략을 갖고 상대방과의 쟁론에 돌입하였다. 말이 사실(pragma)의 차원과 연결되어야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소크라테스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분명히 있으며, 더군다나 결코 개, 돼지는 아니라는 것이 사실의 차원에서 분명한데도 형제 소피스테스는 말의 차원에서 ‘아버지가 없고, 혹시라도 있다면 모두의 아버지일 것이므로 개, 돼지와 같다.’라고 사실과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거짓말과 관련한 논변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과연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말에 관련되는 사물을 말할 때에야 가능하기 때문에 과연 말을 할 때 ‘말을 하는 그것’ 말고 ‘있는 것들 중 다른 어떤 것’을 과연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을 한다. 즉 말을 하기만 하면 원래 하려던 대상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어서 결국 ‘말을 한다는 것’은 ‘말하는 대상 이외에 다른 것’을 말할 수 없다, 즉 거짓말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것은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는 의미를 ‘있는 것을 말한다.’로  전환시켜 어떤 말이든 거짓말이 전혀 불가능할 것처럼 기만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설가조차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는─아니 절대 할 수 없는─사람이 된다. 연설가로서 소피스테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또 ‘사물(것)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말도 기만적으로 해석하여 “훌륭한 이들은 나쁜 이들을 나쁘게 말한다고 알아 두셔도 좋다”라는 황당한 이야기까지 한다. 나쁜 이들의 나쁜 성질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쁘게 말한다.’라고 살짝 혼동시킴으로써 훌륭한 사람들도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이 되는 양 인상을 주어, 훌륭한 사람들, 즉 발화자의 행위의 질이 나쁜 것인 양 혼동을 일으켜 버린다(『에우튀데모스』 284a~285a).

소피스테스의 모든 논변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의 궤변을 논파할 논리적 장치가 없었던 당시로서는 소피스테스의 궤변이 아테네 사람들을 찬탄과 혼동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소피스테스에게 ‘기만과 혼동의 수사’가 있을 뿐이었다. 사실(pragma)과 같은지 다른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상대방을 말로 모순에 빠트려 무너뜨리는 것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모순을 일으켜 상대를 무너뜨리기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테스의 문제 제기 자체는 중요한 것으로 보았지만, 소피스테스들이 제시한 해결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의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들의 무조건적인 상대주의와 막무가내 식 유명론이 초래하는 공동체 정신의 훼손은 심각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이데아론’이라는 것도 소피스테스들의 이런 문제들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귀환시키려는 노력으로 도출된 이론이었을 것이다. 이데아라는 실체보다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이 먼저였다는 말이다.

연설술 : 현혹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다

당시 아테네는 전쟁 선포나 외국과의 조약을 비롯해서 나라의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모든 시민에게 연설의 기회와 투표권이 동등하게 주어지는 대중 집회에서 이루어졌다. 사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연설의 능력은 말로 자신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는 ‘기술(technē)’을 의미했다. 수많은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여 설득하는 일은 연설에 능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권력투쟁이나 견제들로 법정에 서게 되면 연설만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설술은 권력의 기술이자 생존의 기술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아테네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내린 사형선고도, 멜로스(Melos)인들에게 자행한 학살(기원전 417년)도 연설가들의 혀끝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연설에 대한 태도는 철학적으로도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연설회(epideixis)를 일종의 말잔치로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다른 대화편인 『파이드로스』(227b), 『뤼시스』(211c), 『국가』(352b, 354a-b)에도 줄곧 나온다. 소피스테스들은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화려한 말솜씨로 과시하는 행사를 열곤 했는데, 플라톤은 이를 두고 ‘에피데익시스(연설회, epideixis)’라고 칭했다. 플라톤이 이런 표현을 쓸 때는 빈정거림이 들어있었다. ‘소피스테스들의 흥행쇼’ 같은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뭔가 믿을 만한 것은 없고 말만 그럴듯하게 잔치처럼 있는 경우를 비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대화와 달리 연설회는 혼자서 길게 하는 과시 연설이나 강연으로 채워졌다. 원래 소크라테스는 이런 연설을 듣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소크라테스는 당대 최대의 연설가이자 소피스테스였던 고르기아스에게 도대체 연설술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앎(epistēmē)’과 ‘기술(technē)’을 자주 동일시한다. 사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기술’은 반드시 참된 앎을 동반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설프게(idiōtikon)한 것’은 ‘참된 앎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설술’(또는 ‘수사술’)로 번역되는 레토리케(rhētorikē)가 과연 기술이냐는 의문은  그것이 참된 앎을 동반하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따라서 도대체 연설술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참된 앎을 동반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로부터 연설술의 의미를 질문 받은 고르기아스는 연설술을 ‘말로 설득하는 능력’이고 그것은 정의와 부정의, 즉 옳고 그름에 관한 것이며, 그것이 행하는 설득은 ‘앎을 갖게 하는 설득’이 아니라 ‘믿음(확신)을 갖게 하는 설득’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고르기아스의 규정에서 연설술의 설득은 진실이 무엇인지, 사실 자체가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방식의 설득, 즉 가르침을 통한 설득이 아니라 연설가가 심어 주고자 하는 믿음을 갖게 하는 설득이다. 이렇게 되면 설득하려는 것에 대한 지식을 단지 가진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정작 연설가는 설득하려는 것에 대하여 진짜로 알지 못해도 된다. 이를 두고 소크라테스는 “모르는 자가 모르는 자들 앞에서 아는 자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고르기아스』459b) 상황이라고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있다.


그는[연설가-인용자] 그것들 자체는 모르지만, 즉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나쁜 것이 무엇인지,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부끄러운 것, 정의로운 것, 부정의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모르는 자들 앞에서 모르면서도 아는 자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것들에 관하여 설득할 계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까? (…) 만약 배우러 온 자가 미리 알고 있지 않다면, 연설술의 선생인 당신은 그에게 그것들을 전혀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그것이 당신의 일은 아니므로─그런 것들을 모르는데도 그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고, 훌륭하지 않은데도 그를 훌륭한 것처럼 보이게는 만들어 줄 겁니까?(『고르기아스』459c)


바로 여기에 중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연설가가 옳고 그름에 관해 알고 있느냐의 문제는 연설술이라는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느냐는 문제를 품고 있다. 이런 문제를 고르기아스가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는 고르기아스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연설을 해왔는지에 대한 척도가 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통해서 드러난 고르기아스의 모순된 태도─고르기아스는 의술이나 산술 같은 기술에서는 연설술이 앎과 무관하다고 했었다 (『고르기아스』453c) ─는 그가 앎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고르기아스에겐 연설술은 단지 동료 시민들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힘일 뿐이었다. 그래서 고르기아스는 연설술을 배운 학생이 그것을 나쁘게 사용한다고 가르친 선생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게 연설술은 ‘기술’이 아니다. 기술은 사태의 원인을 밝히고 설명을 제시하지만, 연설술은 어림잡는 데 “익숙한 경험이자 숙달된 솜씨”(『고르기아스』463b)에 불과하다. 소크라테스는 이와 함께 치장술과 소피스테스 기술도 다 마찬가지라는 말을 덧붙인다. 기술은 관계하는 대상에 대해 최선의 상태를 고려하지만, 연설술은 관계하는 대상과 교제하며 즐거움을 주는 데만 신경을 쓴다. 즉 대중들의 비위를 맞출 뿐인 것이다. 결국 이것은 ‘아첨’이다. 이 설득은 진실을 쫓는 설득이 아니라 진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설득이기에 ‘사이비 정치술'인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연설술은 정치술의 부분에 관한 모상”(『고르기아스』463d)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규정에 맞서서 고르기아스 진영에 있던 폴로스라는 젊은이가 반격을 시도한다. 폴로스는 부당하게 해를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해를 입히는 것이 더 낫다고 믿고 있는 젊은이다. 따라서 이렇게 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이 있으면 자신에게 해를 입히려는 자를 제압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모범적인 것은 바로 ‘참주적 권력’이다. 힘을 갖고 있으면, 불의를 당할 염려가 없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논리다. 일견 타당한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느 누가 해를 당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연설술은 바로 이런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준다고 하면서 새로운 논변을 제시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정반대다. ‘해를 끼치는 것이 해를 당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가장 나쁘고 해로운 것은 재산이 없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나 무절제 같은 혼의 몹쓸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낫고 덜 비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통념과 달리 나쁜 짓을 하고도 처벌조차 받지 않는 행운의 사람은 가장 비참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쁜 짓을 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병에 걸리고도 고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폴로스는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전자가 후자보다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통념적이면서도 모순적이다. 말하자면 위선적인 도덕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도 아래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따라서 혼 속에 나쁜 상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가장 행복하네. 그것이 나쁜 것들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났으니까. (…)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자가 두 번째로 행복할 거네. (…) 그리고 그는 훈계 받고 질책 받고 대가를 치르는 자였네. (…) 따라서 불의를 지닌 채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자는 최악의 삶을 사네.(『고르기아스』478e)


그러나 옆에 있던 젊은 정치가 칼리클레스는 다른 견해를 갖고 소크라테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자연의 정의’를 정치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었다. 사실 아테네의 정치현장은 정치가들이 사람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출세와 영달을 위해 권력투쟁을 벌이는, 이른바 ‘자연의 정의’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 있던 칼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가 철학에 빠져 있어서 현실에 어둡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런 능력을 철학에 썩히지 말고 정치에 뛰어들어서 명성과 재물을 쌓으라고까지 권한다. 그리고는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죽을 수도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강한 자들을 빚어내는 과정에, 사자들을 그렇게 하듯이, 그들을 어릴 때부터 붙잡아 동등한 몫을 가져야 하며 그것이 훌륭한 것이고 정의로운 것이라는 말로 주문과 마법을 걸어 노예로 만들지요. 하지만 충분히 강한 본성을 지닌 사람이 태어나면, 그는 이 모든 것을 떨쳐 내고 부서트리며 벗어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노예는 자연에 반하는 우리의 기록, 마술, 주문, 법들을 모두 짓밟고 들고일어나 자신이 우리의 주인임을 드러냅니다.(『고르기아스』484a)


칼리클레스는 법(nomos)과 자연(physis)의 대립 문제에서 소피스테스들이 주장했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자연의 정의’를 신봉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반민주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관점에서 민중을 경멸적으로 보았다. 그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참주적 인간’이라고 칭했던 사람들 중 하나인 셈이다. 노모스(nomos)와 퓌시스(physis)의 문제는 종교적 관념, 법, 도덕규범, 관습들이 자연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정하고 약속함으로써 성립하게 되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칼리클레스에 따르면 강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법을 만들고 약자에게 그것을 따르게 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마음대로 어기는 행위, 즉 ‘불의’를 행할 수 있다. 칼리클레스에게 ‘불의’는 강자에게 ‘정의’이다. 훗날 니체는 이런 칼리클레스의 ‘강자’ 논리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칼리클레스의 ‘강자’는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은 다스리지는 않는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절제와 자제력은 자연의 정의에 역행하는 이른바 대중들의 통속적인 미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칼리클레스에게 올바른 삶은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키는 삶이고, 욕구를 억압당하는 삶은 노예와 같은 삶이다. 그러나 이런 칼리클레스의 이론은 무절제한 쾌락주의에 입각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대화중에 쾌락은 무조건 좋다는 태도를 바꾸어 쾌락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고 말을 바꾸기도 하지만 이것도 일관되지 못한 논리일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행위는 좋은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을 하고, 행위의 목적을 쾌락에서 좋음으로 바꾼다. 사실 칼리클레스 말대로 하더라도 좋은 쾌락과 나쁜 쾌락을 선별하려면 기술(앎)이 필요하다. 좋은 삶은 쾌락들을 선별할 수 있는 기술(앎)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좋은 것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쾌락만 추구하는 활동은 기술이 아니고 아첨 활동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칼리클레스의 이론대로 하더라도 연설술은 혼에 대한 아첨활동일 뿐이다. 따라서 강자라고 하더라도 칼리클레스의 해결방식으로 처리한다면, 그것은 무절제한 쾌락주의이며, 아울러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자 아첨의 활동을 하는 것일 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겐 어떤 의미에서 그런 사람은 진정한 강자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다. 결국 연설술은 진실과 무관하게 상대를 현혹시킴으로써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문답법 : 아포리아로 '내'가 무너지다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대화는 논변을 하기 전에 규정할 것을 명확히 확인해 두는 절차를 밟는다. 이를 위해서 소크라테스는 논의를 하는 중에도 섣부른 추측이나 비약을 피하고 뻔해 보이는 것도 빠뜨리지 않고 질문하였다. 초기 대화편들에서 소크라테스는 “A(정의, 경건, 용기 등)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다음, 대화 상대자에게 다수의 A인 것들을 대답하게 하지 않고, 모든 A인 것들을 A이게끔 해주는 ‘하나의 A’만을 집어내 대답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장면이다. 중기에 이르러 플라톤은 이 ‘하나의 A’만이 모든 A인 것들의 A임을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 단일 존재를 다수의 A인 것들로부터 구별해서 ‘형상(eidos)’이라 부른다. 그래서 흔히 이데아론이 절대적이고 단일한 실체를 추구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이데아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서 마치 ‘하나님의 세계’처럼 제시하진 않는다. 차라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자신들은 이것들을 잘 모른다고 하였다.

『메논』에서 소크라테스가 메논의 확신들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메논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크라테스, 저는 당신을 만나기 전에도 당신께선 틀림없이 스스로도 난관(aporia)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난관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듣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제가 보기에는, 당신께서 주술을 걸어 저를 호리고 현혹하며 전혀 꼼짝 못하게 한 나머지 지금 저는 난관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농담을 약간 해도 된다면, 제가 보기에 당신께서는 외모나 다른 측면들에 있어서 전적으로 바다에 사는 넓적한 저 전기가오리와 아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이것 역시 접근하거나 접촉하는 것을 항상 마비시키지만, 제가 보기에는 당신께서도 지금 제게 그와 같은 뭔가를 가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저로서는 영혼도 입도 다 마비되고, 당신께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으니 말입니다.(『메논』80a~b)


사실 메논은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패배했다는 사실만 주목하였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논박(elenchos)을 일종의 주술, 다시 말하면 영혼과 입을 마비시키는 작업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반응은 역설적으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형상과 본질(ousia)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인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무참하게 깨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형상과 본질은 그 자체로서 작동하기보다 그 형상과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작동한다.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 문답법적 정신이 일으키는 진실의 효과일 것이다. 진실은 전기가오리처럼 상대방을 파괴한다.
 

그런데 이 메논의 항변에 대해서 소크라테스의 대답이 더욱 걸작이다.


나는 말일세, 전기가오리 자체가 그렇게 마비되어 있으면서 다른 것들을 마비시키는 것이라면, 물론 그것과 비슷하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비슷하지 않네. 왜냐하면 나 자신은 난관(aporia)을 벗어날 길을 알면서 다른 사람들을 난관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난관에 빠져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게 난관에 빠뜨리기 때문이네. 지금도 탁월함(aretē, 덕/훌륭함)에 관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난 알지 못하네. 하지만 자넨 아마도 나와 접촉하기 전에 이미 알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알지 못하는 자와 흡사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자네와 함께 고찰하고 탐구하길 바라네.(『메논』80c~d)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마비와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소크라테스 자신도 영혼의 마비와 무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문답법은 완전한 앎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 자체를 알게 하는 계기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문답법적 대화 상황에 들어서면, “전에 이미 알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알지 못하는” 상태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문답법 자체가 무지를 생산하여 우리들에게 전달한다는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문답법은 차라리 아포리아(aporia, 난관) 자체를 생산하는 기술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형상과 본질 그 자체는 궁극적으로 결코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설에 빠진다. 차라리 그것들은 일종의 ‘불가능성’으로서 작동할 뿐 도달할 이유도, 도달한 곳도 없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하면 아포리아를 통해 무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설정된 방편 같은 것이다. 이 방편이 성공했을 때 얻게 되는 것은 오로지 아포리아이며, 그래서 돌입하는 공동 탐구로의 출발이다. 이제 비로소 같이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답법은 오로지 아포리아를 산출하고, 무지를 깨닫게 해서 공동 탐구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다시 자기배려로 귀환하는 것을 본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데모스처럼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논변으로 혼동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고르기아스나 칼리클레스처럼 사람들 귀에만 부합하게 아첨하는 말로 현혹시키지도 않을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의 인식체계를 항상 넘어서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자기’를 끊임없이 난관에 빠트렸다. 그리고 그것은 뜻밖에도 나조차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자각을 발생시킨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그 앎이 이 길로 들어서면 항상 모르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아포리아에 빠진 자기야말로 다시 참된 앎으로 들어서기 위한 또 다른 출발점이 된다. 소크라테스의 형상과 본질은 끊임없이 이 길을 종용하는 일종의 방편이다. 이런 관점에서 급기야 소크라테스는 『에우튀데모스』에서 클레이니아스를 형제 소피스테스에게 맡기면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러한 죽음과 사멸을 두 분 스스로 발견했든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 배웠든, 저분들이 그렇게 사람들을 죽여서 쓸모없고 무분별한 사람들로부터 쓸모 있고 분별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낼 줄 아신다면, 그리하여 쓸모없는 상태인 자를 죽여서 쓸모 있는 자로 다시 만들어 내실 줄 아신다면 말일세. 두 분이 그걸 아신다면 두 분에게 그를 넘기세. 저분들이 우리를 위해 그 젊은이를 죽여서 분별 있게 만들게 하고, 우리 모두도 그렇게 하시게 하게. 그런데 자네들 젊은이들이 겁이 난다면, 카르 사람들을 그렇게 하듯이 나를 위험에 처하게 하게. 나는 늙은이라서 위험을 무릅쓸 각오도 되어 있고, 콜키스의 메데이아에게 맡기듯이 여기 계신 디오뉘소도로스에게 내 자신을 맡기니 말일세. 그분이 나를 죽이게 하고, 원하신다면 삶게 하고, 무엇을 원하시든 하시게 하게. 다만 쓸모 있게만 만들어 내시게 하게.(『에우튀데모스』285b~c)


원래 진실 A가 있다고 하자. 문답법식 대화에 들어가면 진실 A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 그것은 전기가오리처럼 영혼을 마비시킨다. 다시 말하면 진실 A를 보유하고 있던 ‘쓸모없는 자’는 죽는다. 그리고 이 아포리아로부터 진실 B를 갖는 새로운 자, ‘쓸모 있는 자’가 태어난다. 즉 진실은 주체를 바꾼다. 그러나 이 진실이 계속 되진 않는다. 다시 새로운 문답법식 대화에 들어서면, 다시 진실 B는 새로운 주체 입장에서 진실이 아니다. 다시 찾아온 진실(진실 C)이 전기가오리처럼 영혼을 마비시킨다. 그것은 진실 B의 주체를 새로운 주체(진실 C의 주체)로 인도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진실을 생산해낸다. 진실은 주체가 변형되어 갈수록 바뀌어 간다. 이와 더불어 주체도 진실이 바뀌면서 변형되어 간다. 이처럼 주체와 진실은 끊임없는 원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푸코는 이를 두고, ‘플라톤의 원’이라고 칭하였다. 즉 진실에 접근한다는 것은 자기 존재 자체에 접근한다는 것이고, 접근하는 존재 자체가 거기에 접근하는 자의 변형을 동시에 역작용으로 발생시키는 동인이 되는 접근이다(『주체의 해석학』224p) ‘신성과의 동일시(Homoiôsis tô theô)'(『테아이테토스』176a~b)라는 표현도 내가 내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진실에 접근하고, 그 진실은 나의 현존재를 변형시켜 나를 신과 동일시하게 된다는 형식으로서, 어찌되었든 주체변형의 문제를 함축하는 용어였을 것이다. 결국 ‘내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가 필요한가?’로 귀결된다. 즉 ‘내가 나를 어떻게 변형시켜야, 다시 말하면, 나는 나 자신을 무엇으로 만들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가?’이다. 결국 진실에 접근하는 능력은 주체를 변형시키는 능력이다. 주체는 주어진 원래의 상태로서는 결코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이것은 소크라테스-플라톤 시대를 비롯하여 고대의 보편적인 특성이고 근본적인 원리였다. 바로 자기배려는 진실을 향해 운동하는 주체의 혁명이다. 거꾸로 말하면 주체의 혁명을 수반하는 진실의 운동이다. 이데아, 그것은 이 운동을 일으키는 최초의 철학적 장치였을 것이다. 따라서 진실은 주체를 변형시키는 하나의 운동 그 자체라고 말해야 할 듯싶다. 



다시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프로젝트는 갈수록 심각해져 갔다. 오랜 시일이 지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가자, 나의 진실도, 상대편의 진실도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사람들도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그것으로 상황은 더욱 이상한 곳으로 흘러갔다.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들에 근거하여 내가 말했던 진실들이 없었던 것인 양 취급되었다. 결국 상황 논리는 내가 지적하는 문제들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나 자신의 두려움도 커져갔다. 이제 내가 알고 있는 진실도, 용기도 사라져 간다고 생각했다. 참 많이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기존의 진실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상대편의 기만을 눈감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들어섰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저들의 기만을 새로운 진실과 주체로서 대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진실을 다시 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비판적 검토(elenchos)에서야말로 나는 나의 진실과 용기를 다시 생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_ 약선생(감이당 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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