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몸은 가볍게, 공부는 써먹게! 상구혈

상구야, 공부 써먹자


이영희(감이당 대중지성)


다산과 복사뼈


며칠 전, 몸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있었던 일화다. 그날은 동서양의 의학을 비교하면서 몸의 역사와 문화를 논한 책을 읽었는데 별 생각 없이 앉아있던 나에게 누군가 “정기신(精氣神)이 뭐예요?” 하는 거였다. 책에는 워낙 짤막하게 언급돼 있어서 잘 모르겠다, 네가 의역학인지 뭐시긴지 공부한다니까 좀 설명해 달라는 거였다. 아침부터 시작해, 빵부스러기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몰려오는 졸음을 쫓느라 여념이 없을 때 이 웬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순간 나는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목구멍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거의 2년 가까이를 이 의역학과 씨름을 했는데 그 공부의 핵심을 묻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오 마이 갓!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쿵푸자세를 취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단전에 힘을 빠샤! 가장 쉽게 이들을 이해시키려면 몸에 펼쳐진 것부터 시작하자. 그래, 오장육부를 설명하면서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정기신을 읊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한마디로 쪽팔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내가 정기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별로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늘의 혈자리 상구는 복사뼈에 있다. 그래서 일찌감치 <혈자리 서당> 훈장에게 이번에는 복사뼈를 가지고 인트로를 잡아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복사뼈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던 나는 뜨악했다. 왕쪽을 당한 나에게 공부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과골삼천(踝骨三穿).


다산의 애제자인 황상의 글에 나오는 말이다. 황상은 70세가 넘어서도 독서와 초서를 멈추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도대체 뭐하러 그 나이까지 책을 읽고 베껴 쓰느냐고 묻자 황상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귀양살이 20년 동안 날마다 저술만 일삼아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났습니다. 제게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려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것을 얻었다.” 몸으로 가르쳐주시고 직접 말씀을 내려주신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귓가에 쟁쟁합니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귀양이 풀리자 다산은 232권의 경집(經集)과 260여 권의 문집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산의 학문적 성과 뒤에는 세 번이나 구멍 난 복사뼈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공부의 달인들은 부지런히 노력하라고 우리를 다그친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어떻게 노력하라는 건지 되묻고 싶다. “공부의 달인들, 당신들은 도대체 어떻게 공부하는 거냐?” (→대답없는 메아리)


달인들이 쉽게 노하우를 가르쳐 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어차피 오늘의 혈자리 상구 때문에 건진 과골삼천이다. 이렇게 얻어 걸린 것도 인연인데, 상구를 통해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보자. 몸으로 들여다 보는 공부법, 상구는 알고 있을 것이다.


비의 공부법


상구는 족태음비경의 혈자리다. 우리 몸에서 비는 위와 함께 몸의 한가운데 있다. 그 중에서 비는 왼쪽 횡격막 아래에 있다. 비위는 오행 중에 토에 배속되어 있다. 그렇다면 비위는 왜 토에 배속되었을까? 그리고 토는 어떤 기운인가?


(脾)는 원래 돕는다(俾)는 뜻이다. 위(胃) 밑에서 피를 거르며 그 활동을 도와 음식이 잘 소화되게 한다는 뜻이다. 위는 주로 음식물을 받아들이고 비는 주로 그것을 소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토의 본성과 닮았다. 몸 한가운데서 아래위를 연결하면서 머물지 않으려는 본성. 토는 화(化)를 이루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뚫고 나가고 싶어 하는 목과 끊임없이 흩어지고 싶어하는 화, 끊임없이 모으고 싶어하는 금과 끊임없이 단단해지고 싶어하는 수를 부드럽게 달래 주며 중재하는 것이 토이다. 그래서 소화가 이루어지는 비는 우리 몸의 목화토금수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목화금수를 품고 변화를 일으키는 비의 현장은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 비의 공부법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실제에 적용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공부, 쓰임새가 있는 공부다. 현장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부를 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 무엇 때문에 이 공부를 하는지, 어디에 소용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대답해야 한다.


비를 어째서 후천지본이라고 하는가? 영아가 하루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면 곧 굶주리게 되고, 7일 동안 먹지 못하면 비위가 말라서 죽게 된다. (…) 신체는 반드시 곡기를 필요로 한다. 음식물이 위로 들어가면 육부에 흩어져서 기가 생기고 오장에서 조화를 이루어 혈이 생긴다. 이로써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므로 비를 후천지본이라고 한다”

이중재, 『의종필독』

 

 

마티스 - <모양>.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나의 신체에 맞추어 변형시키는 작업을 거치는 것이다.

  마티스 - <모양>.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의 신체에 맞추어 변형시키는 작업을 거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몸의 베이스를 이루는 것은 형체가 아니라 기와 혈이다. 이 기와 혈을 만드는 공장이 비다. 그래서 비를 “후천지본(後天之本)혹은 “기혈생화의 원천”으로 여겼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는 게 동양의서들이다. 그래서 이를 좀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밥을 먹는다. 이 밥은 위로 들어가 초보적인 소화를 거친 후 아래에 있는 소장으로 옮겨져 계속 소화된다. 이때 소장은 맑고 탁한 기운을 구별해 맑은 액체는 비에 보낸다. 이것은 비에 흡수되어 각종 영양물질로 변한다. 비는 이것을 폐로 운반한다. 이때 폐는 퍼트리고 내리는 작용을 한다. 그 작용은 안으로는 오장육부를 자양하고 밖으로는 기육(肌肉, 살 혹은 근육)과 주리(腠理, 피부와 기육을 연결시키는 결체 조직), 피모(皮毛, 피부와 털)를 적셔준다. 탁한 것의 일부분은 땀으로 변해 체외로 배출되고 일부분은 하행하여 방광으로 보내져 소변으로 나온다.


요약하면 비는 음식물을 소화하고 그 영양물질로 피를 만들고 인체 수액대사의 중요한 부분을 주관한다. 먹은 음식물을 흡수·운반·배설하는 이 수액대사 과정은 크게는 소화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소화과정은 비기(脾氣)의 운화작용에 의해 완성된다. 운화작용은 비 공부법의 핵심이다. 운화는 공부의 교통정리 같은 것이다. 이리저리 섞여 있는 자료들을 정리하고, 공부가 가닥을 잡을 수 있도록 큰 흐름을 짚어내는 것이다. 그 흐름이 내 몸의 여러 기관들로 흩어지듯이 정체되지 않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공부의 목차와 개요를 짜는 것이다.  

 

습에게 상구란?

 

상구는 족태음비경의 경혈로서 금에 속한다. 금은 오음(五音) 중에서 상(商)에 해당한다. 그 때문에 이름에 상이 붙었다. 족태음비경의 토에서 상구의 금은 어떤 작용을 할까?


금의 본성은 거두어들이기다. 봄, 여름 동안 한없이 펼쳐져 소모되었던 에너지가 가을에 갈무리되며 수렴되는 것이다. 이때 발휘되는 금의 힘을 심평(審平)이라고 한다. 심평은 공평하게 심사해서 죽일 것은 죽이고 살릴 것은 살리는 것이다. 이 살벌한 기운을 비는 어떻게 쓸까?



비의 운화기능은 비의 든든한 백그라운드다. 운화는 비가 수행하는 여러 가지 기능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음식물에 있는 맑고 정미로운 물질을 올리는 것, 혈액의 운행을 통괄하는 것, 풍만하고 건장한 몸을 만들어 주는 것도 운화기능이 순조롭게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수액대사를 주관하는 비는 쉽게 습(濕)을 만든다.


습은 축축한 물 기운이다. 습은 본래 토 기운이고 화와 열은 습토(濕土)를 만든다. 소화과정에서 열이 몰리면 수 기운이 잘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습이 생긴다. 이때 비기(脾氣)가 왕성하면 수액이 체내에 정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비기가 허하면 수습을 운화하지 못하거나 진액을 정상적으로 거둘 수 없다. 이때 작동하는 기운이 상구의 금 기운이다. 상구는 쌓인 수습을 말리고 운화의 길을 터준다. 또 공평하게 심사해서 진액을 만든다. 습에게 상구는 현장을 탄탄하고 밀도 있게 만들어 준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탄력있고 탱탱한 몸은 비의 운화기능과 상구의 합작품이다.


습에게 상구가 작동하는 이 메커니즘. 공부법으로 보면 어떤 것일까? 습은 공부할 때 습관으로 볼 수 있다. 저마다 공부습관이 다르다.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상구의 금 기운이 작동하는 공부습관은 쌓아두는 것이다. 참고자료를 잔뜩 쌓아두고 공부해야 할 것도 쌓는다. 왜?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욕심껏 공부밥상을 차려 놓고 정작 몇 술 뜨자마자 급체를 하거나, 이걸 언제 다하지? 걱정한다. 그러면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눕고 싶어진다. 잠을 청하지만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 


습이 차면? 나무늘보처럼 축 늘어진다(-_-;;).


쌓아두는 습관은 연쇄작용이 일어난다. 쌓아두면 무거워지고, 무거워지면 활동성이 떨어지고, 활동성이 떨어지면 관계가 무너진다. 그래서 습관이 무섭다는 거다. 상구는 이런 쌓아두는 습관을 살벌하게 쳐낸다. 심평하는 것이다. 상구의 심평은 비의 핵심기능인 운화를 돕는 것과 같이 공부 밀도를 높인다.


상구의 심평 공부법은 여러 자료를 섭렵해서 쓸모에 맞게 꼭 필요한 핵심만을 간추려내는 것이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만 가능한 것. 그래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들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변화의 기틀이 된다.

몸이 바뀐다는 것


상구는 발 안쪽 복사뼈의 앞쪽 오목한 곳에 위치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상(商)은 궁상각치우 오음 중에서 금에 해당되어 취한 글자다. 앞으로 혈명에 상(商) 자가 들어가면 ‘아, 요놈은 금 기운이겠구나’ 하면 아마 백발백중일 거다. 구(丘)는 혈이 구릉처럼 융기한 안쪽 복사뼈에 있어서 붙여졌다.


기운의 배치로 보는 상구는 상금(商金)의 기가 구릉에서 발생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구릉은 모래와 돌이 있는 높은 곳이고 굳세고 강한 금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토(족태음비경)가 금을 낳을 수 있고 금기가 이미 모여 있는 상구는 토를 상생한다.


비장의 활동이 약해지면 혓바닥이 마비되거나 명치나 위의 주변이 묵직하게 아프다. 구역질과 트림이 나며 설사나 변비도 생긴다. 또한 발이 차고, 오래 서 있으면 살이나 무릎 양쪽이 붓는다. 몸이 나른하고 마디마디가 아프고 불면증상이 나타난다. 크게 소화에 관련된 것과 습열로 생기는 병이다. 상구는 토의 금 기운으로 비장을 튼튼하게 하고 습사를 체외로 배출한다.


파울 클레 - <황금물고기>. 공부가 신체의 눈부신 변신을 꿈꾸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파울 클레 - <황금물고기>. 공부가 신체의 눈부신 변신을 꿈꾸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토는 땅의 기운이다. 그 기운을 고스란히 간직한 곡기를 먹는 우리 몸은 그 자체로 토다. 그래서 토는 몸이고, 몸으로 하는 공부는 토의 공부다. 토의 공부법은 공부 그 자체가 내 몸을 돌리는 에너지로 작동한다. 소화하고 흡수하고 몸 곳곳으로 보내고 배설하는 과정을 완전히 마치는 공부, 그것이야말로 내 몸을 바꾼다. 그 완전한 마디를 완수해야만 새로운 몸으로 전이된다. 


이 마디 중에서 나는 어떤 마디를 놓치고 있는가? 소화 흡수과정에서부터 밀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내 사지기육은 물렁하다. 그렇게 엉성하게 만든 영양물질도 제대로 운반하지 못하고 쌓아두기 일쑤다. 공부의 적체, 이것은 독이다. 막혀있는 지식은 유통되지 못할 뿐 아니라 유통되더라도 그 탁한 기운은 담론을 흐린다. 습(習)이 습(濕)이 되지 않도록 습(習)을 바꿔야 한다. 기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 공부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


하여 공부를 써먹자. 입으로 말하고, 글로 쓰고, 몸으로 표현하자. 골 빠지는 공부가 아니라 몸을 바꾸는 공부, 내 삶이 바뀌는 공부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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