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이슬이 넘친다, 이슬-람(濫) 백로

백로, 석별의 정으로 촉촉하게!


송혜경(감이당 대중지성)



“선생님, 이거 이상해요! 절기에 왜 복날이 빠졌어요?” 함께 공부하는 50대 중반과 30대 초반의 선생님들이 내게 진지하게 묻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특히 ‘백로(白露)’라는 절기는 거의 들어본 적 없다며 의아해한다. ‘복날’이 훨씬 유명하다면서.ㅋㅋ 이런 식으로 세시풍속과 절기를 헷갈려 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절기가 있기도 하다. 각각의 절기에도 팔자가 있는 것이다. 각 계절을 여는 입절기는 많이 거론되고 있고 음양이 교차되는 춘분․하지․추분․동지도 유명한 절기다. 또 더위와 추위를 말해주는 소서․대서․소한․대한 등의 절기도 긴요하게 활용된다. 그런데 가을 절기의 반을 차지하는 백로․한로․상강, 이 ‘이슬 시리즈’ 절기는 농사일과는 거리가 멀어진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에 따라 달리 맺히는 이슬의 양상이 말해주고 있는 바가 있을 터. 이번 절기는 백로(白露). 백로의 이슬이 무얼 말해주기에 24등분한 시간의 한 조각, 가을 15일 동안의 이름이 되었을까?


이슬, 음양의 눈물
 

백로(白露)라는 절기의 이름이 말해주듯 이 시기 동안은 아침나절에 이슬이 맺힌다. 이때 아침 산책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수풀이 무성한 길을 걷다 보면 이슬이 다리를 척척하게 적시던 경험 한번쯤은 해보셨을 거다. 이슬은 음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절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절기는 음양의 변화무쌍한 운동에서 변곡의 마디를 골라낸 것이다. 백로의 이슬 역시 음양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 바, 이 시기 음양의 추이를 살펴보자. 백로는 처서와 추분 중간에 있는 절기다. 그러니까 여름의 습한 무더위가 처서를 기점으로 한풀 꺾이고 추분의 음이 우세해지는 시기, 그 틈이라는 말인데, 과연 그 사이에서 음과 양은 어떤 모습으로 천지를 뛰놀고 있을까?


8월에는 四陰이 아래에 있어서 풍지관괘이다. 음기의 하강이 오만육천리에 도달해 이때에는 음기의 힘이 크게 사용되어 양기가 크게 쇠약하여 진다. 음은 죽이는 성질이 있고 양은 살리는 성질이 있다. (……) 8월은 금이 왕성하여 가을의 찬바람이 하늘에서 불어온다. 천기가 합하여 이슬이 생기고 가을의 음기가 내리면 양기가 압박을 받아 음기와 양기가 서로 사귀어 만나는 때가 이슬이다.


─강진춘, 『위대한 자연변화』, 도림출판사, 1997


뭐, 오만육천리의 거리가 얼마간인지는 잘 모른다쳐도 그동안 한 걸음 물러서 있던 음기가 음력 8월이자 양력 9월에 이르러 성큼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날씨가 어떤가? 건조한 대기와 따가운 햇살 때문에 낮에는 여전히 더운데, 밤이 되면 갑자기 공기가 차게 느껴진다. 낮에 더운 거 생각해서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가 놀다 밤에 오들오들 떨기 딱 좋다. 이렇게 음기는 낮보다 밤에 왕성하게 활동해서 그의 출현을 알린다.
 

땅의 가을은 이슬이 내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찬바람이 불 때쯤이면 물(水)의 계절을 예고하듯 이슬이 찾아온다.


그래서 음기와 양기가 밤에 몰래 데이트 하는 절기, 백로의 이슬을 단순히 공기 중의 수증기가 찬 공기를 만나 생기는 거라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 밋밋하다. 일상적으로 ‘이슬’이라는 말은 ‘눈물’ 대신 쓰이기도 하는데, ‘눈에 이슬이 맺혔다’는 표현은 강짜를 부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우는 장면보다, 감정을 안으로 삭이는 간절한 정황을 그리게 한다. 여기에 ‘형장의 이슬’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는 것처럼 이슬은 또한 덧없는 것,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또한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이라는 표현은 순수함 그 자체라는 의미와도 통해 엑기스, 영액과 같은 고농도의 결정체라는 인상도 준다.
 

아침나절에 잠깐 맺혔다 해가 떠오르면 사라져버리는 안타까움과 눈물, 그리고 엑기스라는 의미와 결합해서 백로의 이슬을 다시 조명해보자. 만약 어떤 남녀가 서로를 쳐다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다면? 두 사람이 연인관계이며 그들 사이에 사연이 깊을 거라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 눈물은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다른 기운의 마주침에서 만들어지는 상호작용, 힘, 에너지의 다른 이름이 감정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찐한 무형의 감정이 간절한 상황과 만나 눈물이라는 유형의 물질로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백로의 이슬 역시 양이 물러서고 음이 성큼 다가올 때, 음기와 양기가 사귀어 애정을 나누는 가운데 만들어진 ‘눈물 엑기스’인 셈이다.


 

젠장! 그런 거 없다~~^^ 이슬이 필요하십니까? 음양탕이 필요하십니까? 애주가들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냉술-온술이 가능한 신제품! 참, 이슬-정수기~^^

이젠 풀잎에 맺힌 이슬이 좀 영험(?)하게 보인다. 그 눈물 엑기스 어디 쓸 데 없나?ㅋ 왜, 어린 시절 동화를 보면 진심 어린 한 방울의 눈물로 야수나 개구리가 마법이 풀려 멋진 왕자로 변한다거나 다 죽어가는 사람이 산다던가 하지 않은가. 그런 기적까지 바라진 않겠지만 백로의 이슬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옳거니!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은 속병이 낫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근데 왜 깻잎도 아니고 뽕잎도 아니고 콩잎일까? 물론 밭에 흔하게 있는 게 콩잎이기도 했거니와, 『동의보감』「비장」편을 보면 “비병(脾病)에는 짠 것을 먹는 것이 좋은데, 콩․돼지고기․밤․미역 등은 모두 짠 것들이다.”이라 하여 콩이 흔히 속병이라 말하는 비병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백로에 접어들면 콩잎은 빳빳해지고 노랗게 변해 식용으로는 못쓴다고 한다. 처서가 지나면 콩잎은 영양분을 죄다 콩이 영그는 데 바치기 때문이다. 그때 콩으로 전달되기 전의 이슬을 손으로 훑어 마시면 비병에 좋은 콩의 기운과 이슬의 영험한 기운을 취하는 것이 되니 속병에 도움이 안 될 수 없을 거다. 참고로 속병이 고민인데 ‘콩잎의 눈물’을 구하기 힘든 분들은 대신 따뜻한 물과 찬물이 조화를 이룬 음양탕으로 정성을 들여 보시길~~

눈물, 카타르시스, 작별
 


백로가 열어젖히는 음력 8월이자 양력 9월인 유(酉)월은 금(金)으로 똘똘 뭉친 달이다. 그 동안 앞선 달 중 몇몇은 겉으로는 목(木)이나 화(火)인데 막상 포장을 풀어 보면 그 안에 그것과는 다른 오행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유(酉)는 겉과 포장과 내용물이 일치하는 몇 안 되는 애다. 게다가 그 안에 양금(陽金)인 경(庚)과 음금(陰金)인 신(辛)이 자석처럼 철썩 달라붙어 있어 12지지 중에서도 가장 센 금이다. 그래서 유(酉)금은 사주에 그것과 합 관계를 이루는 글자가 있으면 죄다 금(金)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이더스의 손’이기도 하다.

유(酉)는 닭을 상징한다. 닭의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은 뾰족한 금의 상징이다.. 좀 웃기기도 하면서 어딘가 매섭게 느껴진다. 약간 그리움에 휩싸여 있는 듯한 저 포즈. 그리움에 휘말려 들어간 닭, 그닭~^^

오행에서 금(金)은 슬픔의 감정이 배속되어 있기도 하다. 그게 백로의 이슬이 눈물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또한 변화와 결단, 마무리가 금기(金氣)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금이어도 너무~~금인 유(酉)가 천지만물을 꽉 채우는 백로, 그때에 빚어지는 구체적인 사건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거기서 힌트를 얻어 백로를 백로답게! 보내보자.   
 

(木)으로 시작한 봄에서 여름의 화(火)기운으로 정신없이 달리다 숨을 고르고 있자니 벌써 가을이다. 이 시기에 농부와 아낙들은 수확을 앞두고 잠깐의 농한기를 갖는다. 그동안 인간이 할 일들은 다 했고 나머지는 바람(木)과 햇빛(火), 흙(土)과 비(水) 그리고 건조한 기후(金)에 맡겨 놓는다. 백로에 비가 많이 와버리거나 태풍이 또 찾아오거나 하면 일 년 농사 말짱 도루묵이지만, 인간의 힘으로 막아낼 도리는 없다. 약간의 걱정과 기대는 있지만 일단은 흙에서 손을 떼고 눈을 돌린다. 대신 주변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이 절기는 아낙들의 절기이다. 그간 바쁜 집안일, 농사일을 두고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다가, 친정 식구들과 서로 통문을 보내 만날 날짜와 만날 장소를 정해서 중간에서 만난다. 이를 ‘반보기’라 한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싸온 음식을 나눠 먹고 소식도 전한다. 상상해보면 시집 간 아낙은 오랜만에 부모, 형제를 만나고 엄마 손맛도 맛보게 되는데 그게 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모르긴 몰라도 눈물을 찍어내며 부둥켜안기부터 했을 거다. 아마도 백로의 이슬이 풀잎에만 드리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양을 남녀로만 해석하는 건 너무 협소하다. 상대적으로 다른 기운들이 만나는 것 역시 음양의 사귐이며, 여기서 만들어진 눈물은 카타르시스로서 작용한다. 그간 마음에 쌓아두었던 묵은 감정들이 담(痰)이 되어 가슴에 뭉쳐있었을 것이다. 아낙들의 그리움의 정서도 늘 마음 한켠에 있었을 터. ‘반보기’를 통해 그들은 그런 마음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구나! 어찌할 바 모르고 쌓여있던 감정들, 마음의 담(痰)을 가장 센 금(金)인 유(酉)월을 맞이하여 싸악~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봄에도 정리했는데, 가을에 또 무슨 정리? 그런데 목(木)기운처럼 힘차게 뻗어나가기 위한 봄과는 달리 가을의 정리는 속도와 마음 씀이 다르다. 봄에는 출발에 앞서 새로운 기대와 결심으로 겨울의 묵은 기운에 생기를 불어 넣기 위해 정돈했다. 반면 가을에 들어선 정리는 조금 숙연한 마음으로 하게 된다. 이를 테면 ‘작별의 정리’라고나 할까? 봄과 여름의 흔적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그 때의 마음이 보이고 그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다시 만나 새로운 마음이 만들어진다. 봄과 여름의 양의 기운이 차분한 가을의 음 기와 만나, 마음에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백로니까 이슬같은 눈물을 꼭 흘려야 하냐고?^^ 핵심은 눈물이 아니다. 눈물은 그간 써오던 양기가 낯선 음기와 만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 백로에는 이렇게 그동안 오고갔던 마음들 그리고 마음이 만들어낸 유형의 물건들, 그 배치들과 작별하고 재배치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해보자. 여기저기 뭉쳐있는 감정을 토해내는 카타르시스가 새로운 생명을 부른다.   


아~~ 이 뽕-feel! 눈물을 아껴요~ 눈물을 거둬요~ 이별보다 더 아픈 건 외로움인데~ 무시로~ 무시로~ 맞다! 이젠 좀 흔들어볼 시간이다. 마음의 응어리진 것들을 노래로 흥얼거리면서! 듣고 싶다! 무시로~



* 독자 여러분들에게

처서가 되던 날 더위가 확 꺾여 절기의 위력을 실감했었습니다. 무더위에 정신줄 놓고 있다가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덮쳐 정신이 번쩍 들었네요. 여기 서울은 전에 없이 휴교령까지 내려 잔뜩 긴장했는데 다행히 별 피해는 없었습니다. 헌데 전남을 비롯한 서해 지역은 정말 난리도 그런 난리가……. 과일, 벼, 양식장의 물고기가 떨어지고 쓰러지고 죽고. 절기력으로 살아가면서 저도 농사짓는 기분이었는데 공들인 일 년 농사가 한 방에 무너지는 걸 보니 착잡하더라구요. 숙살지기(肅殺之氣)란 게 이런 건가 봅니다. 쭉정이와 실한 과실을 가리는 작업 없이 때가 되면, 판단 없이, 선악 없이, 예측 없이 덮쳐 각자 생장소멸의 길을 걷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구선 다음 날 해가 쨍하게 뜬 거 보세요. 막 울다가 금세 방긋 웃는 순진무구한 아이를 보는 것 같죠. 그 앞에서 누구 탓을 하고 무슨 말을 하겠어요. 차분할 줄만 알았던 가을이 이렇게 울퉁불퉁할 줄은 몰랐네요. 역시 금화교역은 그리 만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가 봅니다. 피해 입으신 분들은 어서 순환되는 일상을 되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으랏차차차!^^


※ 임진년 백로의 절입시각은 9월 7일 오후 2시 28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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