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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슬플 때 소화가 잘 안되는 이유

by 북드라망 2011. 11. 16.
주간 김현경

슬픔(悲/憂)을 주관하는 건 폐다. 폐는 가을의 기운이고 가을이 되면 만물이 다 떨어진다. 이 하강하는 기운이 슬픔의 감정이다. 눈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큰 슬픔을 만났을 때 털썩 주저앉는 것, 저절로 어깨가 축 처지는 것, 모두가 가을 금기의 하강 기운이다. 낙엽이 질 때 우수에 잠기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폐는 외부와 마주치는 관문이기 때문에 감수성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것,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다. 이것이 모자라면 일단 패기가 없을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호기심도, 감응력도 동시에 다 떨어진다. 혹은 반대로 툭하면 우는 사람이 있다. 이건 감수성이 아니라 일종의 피해망상이다. 늘 시선이 외부를 향해 있기 때문에 약간의 자극에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다. 폐와 대장은 부부지간이니 슬픔에 민감한 이들은 자칫 과민성 대장증세에 시달릴 수 있다. ‘대변’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요즘 의학자들은 장을 가리켜 제2의 뇌라고 말한다. “장의 ‘미세 융모’와 뇌의 ‘신경세포’를 동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255쪽

사용자 삽입 이미지고흐, <슬퍼하는 노인> _ "슬픔은 폐와 관련된다. 또한 간이 허해서 슬퍼하게 되기도 한다. 슬퍼하면 기도 소모되는데, 너무 슬퍼하여 마음이 동하면 기가 끊어져 죽게 된다."
─신동원 외 지음,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73쪽


현대 생리학에서는 감각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① 특수감각 : 시각, 청각, 후각, 미각, 평형감각 → 얘네는 뇌신경에서 직접 연결된 감각
② 체성감각 : 촉각, 압각, 온각, 냉각, 통각, 운동감각 → 얘네는 뇌신경에서 척수신경을 통해 가는 감각
③ 내장감각 : 장기의 감각들 → 얘네는 뇌간에서 뇌신경을 통해 느낀다고 했던 듯.(지금 이 분류와 관련된 건, 올해 초에 문지 사이에서 열렸던 “몸: 공감의 토대” 강의 때 내가 필기한 내용이다..... 이 점 감안하시라...^^;;)

당시 “몸: 공감의 토대”라는 강의를 하셨던 선생님(정우진 샘)은 동양의학이 내장에 "감정"을 부여했다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감정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아직 현대의학이 명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내장감각에 연결된다는 가설들도 있는 모양이다). 근대 이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감각기관이 시각을 대신해서 근래에 ‘촉각’이 주목받는 이유는 시각 중심의 서구근대문화, 즉 분절화되고 개별화된 삶을 보완할 감각기관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생리학적으로도 위의 분류처럼 촉각은 다른 경로를 통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것. 시각은 거리를 유지하며 맥락에서 상대적을 오감 중 가장 자유로운 데 반해, 촉각은 대상에 직접 닿아야 느껴지는 감각이고, 어떤 식이든 관계와 공통감각이 전제되어 있다고 말씀하신 걸로, 내 노트에는 기록되어 있다.^^
 
강의를 들을 때 이미 『동의보감』에서 칠정(七情: 기쁨, 노여움, 근심, 생각, 슬픔, 놀람, 두려움)이 오장육부에 배속되어 있다는 것을, 고미숙 샘 옆에 있다가 주워들어 알고는 있었지만(정확히 말하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새삼 감정을 장부에 연결시킨 점이 신기했었다.

그러다 고미숙 샘의 리라이팅 『동의보감』 작업을 하면서 다시, 칠정과 오장육부의 깊은 관계를 만나게 되었다. 맨 처음 인용문에 있는 것처럼 칠정 가운데 슬픔과 근심(걱정)을 주관하는 것은 폐이다. 『동의보감』 「내경편」을 보면 “근심, 걱정이 풀어지지 않으면 의(意)를 상한다. 의는 비(脾)의 신이다. 또, 근심, 걱정이 지나치면 기가 막혀 흐르지 못한다. 근심하면 막혀서 통하지 않고 기와 맥이 끊어져 위아래로 통하지 못한다. 기가 안에서 막히면 대소변의 길이 비뚤어져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걱정이 많을 때 괜히 소화가 안 되는 게 아니었던 거다.ㅠㅠ 근심과 걱정이 풀어지지 않으면 의를 상하는데, 이 의는 또 비(장)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동의보감』(을 비롯한 동양의학)에서는 오장과 육부가 짝을 이루는데, 폐의 짝은 놀랍게도(!) 대장이다. 그러니까 폐가 안 좋으면 대장도 안 좋다는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폐는 우리 몸에서 외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기관이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 감기에 잘 걸리는 이유도 폐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류시성·손영달 지음, 『갑자서당』, 93쪽


이외에도 다른 감정들이 어떤 장기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 싶은 분들은 고미숙의 리라이팅 『동의보감』을! ^^ 서양의학 담론에 익숙한 우리의 사고를 깨줄 동양의학 담론뿐 아니라,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 예컨대 까닭모를 공허함과 우울증, 동안열풍, 야행성 체질, 병에 대한 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경시 등의 원인에 대해서도 속시원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 10점
신동원.김남일.여인석 지음/들녘(코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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