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낭송 조선왕조실록 풀어 읽은이 인터뷰1 - 태조, 태종 실록

by 북드라망 2017. 10. 27.

낭송 조선왕조실록 풀어 읽은이 인터뷰1

『낭송 태조실록』  풀어 읽은이 정기재 인터뷰



1.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적 기록물인데, 낭송으로 읽는다는 것이 무척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번 낭송Q시리즈 조선왕조실록편에서 선생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태조실록을 풀어 읽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옛이야기를 좋아해 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잡지사에 근무했을 때에도, 여행 기사를 쓸 때마다 문화유산 답사코스를 염두에 두곤 했고요. 때문인지 조선왕조실록이 한글로 번역되어 인터넷에 공개된다고 했을 때, 언젠가는 꼭 읽어보겠노라 다짐했습다. 그리고 그 다짐이 실현된 건 10여 년이 지난 후인 2013년의 일입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감이당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학인을 모집했고, 그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태조 이성계를 만난 것이죠.



태조 실록을 읽을 즈음 저는 한 역사교육 세미나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역사 교과서 검정 문제가 민감하게 대두되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많은 이들이 민족주의 역사관에 몰입했습다.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널리 알려 민족적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민족을 강조할수록 민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혼란스러웠습니다.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단일 혈통의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여진족·거란족·말갈족·한(漢)족·몽골족 등 우리와 역사를 공유하는 타자들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그 때 떠오른 것이 태조 이성계였어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태조 이성계는 스무 살까지 몽골 이름을 쓰며 원나라 사람으로 살았던 인물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태어난 동북면(함경남도)은 당시 고려 땅이 아니었습니다. 여진족이 점유하고 원나라가 다스리던 국경 밖의 지역이었고요. 요약하자면, 태조의 선조는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군에 투항했고, 그 후 약 100년간 여진족들과 인척관계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태조의 선조들은 민족의 배반자들이었고, 그 후손이 돌아와 새나라의 창업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실록에 이러한 사실이 숨김없이 구체적으로 기록됐다는 점이었어요. 그것도 어떠한 비난의 뉘앙스조차 없이 말입니다. 또한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 사단은 여진인, 몽골인은 물론 회골인까지 포함된 다국적군이었습니다. 이처럼 『태조 실록』은 우리 역사와 함께 한 수많은 타자들을 소개하며, 혈통에 국한된 민족이라는 개념에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을 독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기꺼이 『낭송 태조실록』을 엮는 데 동참했습니다. 



2. 『태조 실록』을 『낭송 태조실록』으로 풀어 읽으시면서 가장 염두에 두셨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태조실록』은 『낭송 태조실록』  통틀어 가장 역동적인 시간들을 기록했습니다. 500년간 유지해온 고려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시대이니, 그 변화의 진폭이 남다를 수밖에 없겠죠. 때문에 『태조실록』에는 위화도 회군, 정몽주의 죽음, 한양천도, 왕자의 난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모두들 드라마나 소설, 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변주된 유명한 사건들이죠. 그런데 실록에 묘사된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기록은 드라마나 소설보다 더 구체적이고 상세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몇몇 승지와 대신들은 궁궐에서 태조의 곁을 지켰다. 때문에 궐 밖에서 진행되는 정변의 경과를 알 수 없었고, 서로 노심초사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정변에 대한 교지의 초안을 작성하라는 어명이 대신들에게 도착한다. 이에 승지는 초안을 작성해 대신들의 확인 서명을 받으려고 했고, 대신들은 혹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교지를 폭탄돌리기 하듯 이리저리 토스한다.’


이처럼 실록에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장이 기록돼 있습니다. 실록에는 주인공들의 표정과 대화는 물론, 수많은 조연들의 제스처까지 놀랄만큼 생동감있게 묘사돼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에 의해 재단된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 현장을 조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사건을 보다 풍요롭고 흥미롭게 관전할 수 있겠죠. 왕자의 난을 왕자와 공신의 권력싸움으로 일반화시키는 대신, 사람들의 촌철살인 생존법, 자식과 권력을 잃은 임금의 비애 등 역사를 읽는 스펙트럼이 다양해지는 것이고요. 


 때문에 이번 『낭송 태조실록』  엮는 동안, 사관이 남긴 구체적 현장을 최대한 생생하게 옮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부디 독자들이 『낭송 태조실록』을 통해 익숙한 기존의 시선을 버리고 역사의 다양한 측면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낭송 태조실록』을 풀어 읽으시면서 느끼신 다른 왕들의 실록과는 다른 『태조실록』만의 특징을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거침없는 목(木)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단단히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온 새싹은 거침없는 기세로 치고 오르며 희망의 기운을 전파합니다. 태조 이성계와 그의 동지들은 난공불락 같았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창업하는 데 성공했죠. 그것도 군사적 대치를 거친 혼란의 창업이 아니라, 구체적 플랜을 가지고 실행한 준비된 창업이었습니다. 때문에 당시 조선은 새나라·새시대에 대한 희망으로 술렁이고 있었고, 태조 실록 곳곳에 그들의 건강하고 활기찬 기운이 넘칩니다. 거침없이 단행되는 한양 천도와 도성 건설, 차근차근 도입 되는 유교식 정치 시스템, 배포 든든한 임금과 성실한 관료들의 협치는 500년 조선의 토대가 되기에 충분했죠. 한편, 이러한 낙천적 분위기는 여전히 건재한 고려의 자유분방한 문화와, 아직 권력화 되지 않은 유교적 건강함이 공존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용의 눈물> 중에서


또 하나, 태조 이성계는 조선 왕들 중 유일하게 실제로 전장에서 전투를 치른 인물입니다. 그것도 고려 최고의 명장으로 전설 같은 전투를 여러 번 치러낸 영웅 중의 영웅이지요. 때문에 『태조실록』 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유일하게 임금의 전투 장면이 실려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장르가 전반적으로 ‘드라마’에 해당한다면, 『태조실록』  유일한 ‘액션 느와르’라고 할까요? 만일 근대 이전의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치러졌는지 궁금하다면 단연코 『태조실록』을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4. 선생님께서 풀어 읽으신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과 그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6장에 소개된 조선의 새벽조회 풍경입니다. 조선은 임금과 재상이 함께 정치하는 유교적 이상국가를 표방했습니다. 때문에 임금과 재상이 함께 모여 정사를 논의하는 조회는 조선의 가장 중요한 정치제도 중 하나입니다. 하여 조선의 대신들은 개국 초부터 태조에게 조회를 자주 열어 정사를 돌보시라 끊임없이 채근하죠. 그런데 태조 이성계가 누군가요? 왕이 되기까지 58년간 전장을 누빈 뼛속 깊은 무장입니다. 태조는 구체적인 정사야 정도전, 조준 등 능력 있는 대신들이 맡아보면 될 일이고, 자신은 한양 천도, 국경 정비 같은 굵직한 일을 주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신들이 틈만 나면 조회를 자주 열라 졸라대니 태조는 심기가 몹시 불편했습다. 이때 태조가 선택한 것은 정공법죠. 원칙대로 5일마다 이른 새벽에 조회를 열겠으니, 모든 대신들은 빠짐없이 나와 직접 정사를 보고하라 명한 것이에요. 이에 대신들은 동도 트기 훨씬 전에 근정전에 나와 정렬해야 했고, 임금은 일찌감치 화톳불을 밝히고 이들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조회를 여니 그토록 말 많던 대신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에 이성계는 호통을 치며 대신들을 나무라고, 정도전은 노한 임금을 달래느라 진땀을 뺍니다. 더 재미있는 건 조회가 끝난 다음입니다. 조회가 얼마나 일찍 열렸던지 조회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동이 트지 않았죠. 이에 태조는 조준, 정도전, 남은 등과 술을 마시고 취해 버렸고, 태조의 괘씸죄에 걸린 대신들은 정오가 될 때가지 퇴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조회라고 하면 백성을 위해 노심초사 근심하는 임금과 불철주야 노력하는 대신들의 엄숙한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 현장에는 심기 불편한 임금, 눈치 보는 신하가 있으며, 동이 트지 않아 술판을 버리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처럼 실록은 우리가 조회에 대해, 조선의 정치에 대해 가졌던 표상을 말끔히 깨뜨려 버리고, 유쾌하고 엉뚱한 현장의 모습을 복원시킵니다. 익숙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는 것, 태조 7년(1398 무인) 윤5월 21일에 실린 조선의 새벽조회 풍경은 이런 실록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사라 생각합니다.

  


5. 끝으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록’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함께 소리내어 읽는 ‘낭송’의 물리적 효과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역사를 전공한 저조차 실록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사람을 압도하는 방대한 분량과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한자어의 장벽 때문일 것입니다. 덧붙여 실록의 내용이 다소 엄숙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작용했을테고요. 나는 독자들이 낭송 태조실록을 통해 이러한 장벽의 문턱을 넘기 바랍니다. 이 책을 읽고 조선왕조실록이 가진 매력을 발견하고, 그를 계기로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를 방문해 자신의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낭송의 형식을 적극 활용하기 바랍니다. 낭송은 혼자서 하는 것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여럿이 함께 목청을 높여야 제 맛입니다. 저는 독자들이 낭송을 핑계로 둘러 앉아 조선과 조선의 이야기에 대해 수다를 떨기를 권합니다. 나아가 그를 계기로 실록을 함께 읽을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책의 서문에도 밝혔지만, 지난 4년간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수 있었던 건 함께 하는 도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혼자서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독자들도 이 책을 도반들과 낭랑하게 낭송하며 역사에 대한 수다에 동참하길 기대합니다. 




『낭송 태종실록』 풀어 읽은이 김석연 인터뷰



1.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적 기록물인데, 낭송으로 읽는다는 것이 무척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번 낭송Q시리즈 조선왕조실록편에서 선생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태종실록’을 풀어 읽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던 제게 역사는 많은 것을 들려주었습니다. 역사 속 인물들은 타자와 부딪히며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하나의 사건은 시공을 초월해서 살아 있는 삶의 현장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마주침을 통해 역사는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을 서로 연동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역사를 접하는 방식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과서나 소설·드라마·영화 등 대중매체를 통해 역사를 접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는 역사를 시대적 나열에 그치게 하거나 누군가에 의해 변주된 이야기에 머물게 합니다. 저는 이런 방식에서 벗어나 1차 자료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감이당에 조선왕조실록 세미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2014년 7월 세미나에 처음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때 세미나는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후였고, 태종 10년을 읽고 있었습니다. 태종은 18년간 왕위에 있었는데, 저는 『태종실록』의 딱 절반부터 읽기 시작했던 거죠. 그런데 그 절반에서 만난 태종은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이방원이란 사람과 무척 달랐습니다. 이전에는 이방원을 혁명의 동지와 형제를 죽인 비정한 권력의 화신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록은 그가 신생 조선의 비전을 어떻게 세우고 그 계획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겪었는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태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이었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피로 얼룩진 그의 과거가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혼란의 시기 권력의 장에 들어 선 사람은 누구나 목숨을 걸어야 했다는 그의 말에 수긍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태종은 수를 던져 판을 흔들고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나간 타고난 승부사였습니다. 


또 태종은 조선을 안정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과 주변을 관리합니다. 비정할 정도로요. 그러나 무엇보다 태종이 군주로서 빛나는 지점은 죽기 4년 전 양녕대군 대신 충녕대군(세종)으로 세자를 교체한 사건입니다. 태종의 안목과 결단이 출중한 세종의 능력과 합쳐져 조선이란 나라를 확고부동하게 만든 사건이니까요. 이 특단의 조치는 배다른 동생과 동지를 죽이며 내세웠던 ‘적장자 세자라는 자신의 명분’과 ‘조선의 미래’라는 양자를 두고 고심한 결과였습니다. 이런 태종을 보며 못 읽고 지나간 태종 9년까지의 내용이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차에 낭송집을 준비하게 됐고, 이 시간을 통해 태종과 그의 사람들 그리고 태종의 시대와 진하게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2. 『태종실록』을 『낭송 태종실록』 으로 풀어 읽으시면서 가장 염두에 두셨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태종은 태조와 정종 다음인 조선의 3대 왕이지만 개국의 과정에 누구보다 깊숙이 관여했고, 개국의 고비마다 그 중심에 섰던 실질적인 주역입니다. 이런 파란만장함은 왕위에 오른 후에도 계속 됩니다. 도처에 포진해 있는 공신들의 강력한 힘들을 정리해야 했고, 새 나라 조선에 조선만의 색을 입혀야 했습니다. 이것이 태종이 해결해야 할 과업이었고 태종대만이 갖고 있는 시공의 특이성입니다. 태종은 공신들의 세력을 제압해 힘의 주도권을 갖지만 반면 이들을 철저하게 보호합니다. 단, 왕권에 도전하는 기미조차 없다면요. 태종과 공신들은 뜻을 함께했던 동지이지만 이제 관계가 바뀐 것입니다. 이에 양자는 마음을 다해 존재를 변화시켜야 했습니다. 왕과 신하로 말입니다. 이런 전제하에 태종은 공신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왕권을 강화해 나갑니다. 


태종은 권력을 위해 무력을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무지막지한 냉혈한이 아닙니다. 고려 말 우왕 8년(1382년) 과거에 급제한 유학자이자 관료로써의 실무능력을 갖춘 능력 있는 신진 지식인이었고, 지략과 결단력을 고루 갖춘 행동하는 리더였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자신의 과거를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선을 수성하려는 의지의 동력으로 작동시킵니다. 아주 주도면밀하게요. 그는 신하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았다가 가장 시의적절한 때를 포착하면 터뜨려서 한 번에 상대를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확실한 명분을 제시하니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이 시대는 명령이 아닌 명분이 중요했습니다. 왕의 명령이라고 다 받드는 때도 아니었고요. 명령이 통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분은 적당한 구실이나 핑계의 차원이 아니라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합니다. 도덕적으로 마땅한 것, 태종은 이런 명분을 통해 일의 완급과 수위를 조절하며 서서히 왕권을 강화해 나갑니다. 태종의 통치 수단은 절대 무력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런 통치의 과정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3. 『낭송 태종실록』을 풀어 읽으시면서 느끼신 다른 왕들의 실록과는 다른 태종실록만의 특징을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실록은 왕의 공적인 일과를 기록한 것이기에 사사로운 가족사와 관련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간혹 만날 수 있는 기사가 중전과 세자에 관한 것 정도입니다. 이들에 대한 기록도 대부분이 공적인 일과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태종실록에는 중전인 원경왕후 민씨, 아버지 태조, 세자 양녕대군에 관한 기사가 유난히 많습니다. 


원경왕후 민씨는 부인이자 혁명의 동지였습니다. 원경왕후의 말대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바로 옆에서 함께 버티고 이겨낸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왕이 된 남자는 이전의 남편 노릇만을 하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왕의 사랑이 중전 한 사람만을 향할 수는 없었는데 원경왕후는 이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원경왕후의 질투가 심해지자 화가 난 태종이 내쫓으려고까지 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원경왕후는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중전이 아닌 한 여자의 마음이 실록에 잘 남겨져 있습니다.


<용의 눈물> 중에서



태종은 자신이 세운 둘째 형 정종으로부터 선위를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강력한 정적들을 제거하는 과정 중 가장 큰 걸림돌은 아버지 태조 이성계였습니다. 개국에 공이 가장 컸던 자신을 내친 아버지였기에 태종이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태조의 뜻을 거역함을 전제합니다. 실록에는 태조가 아들을 얼마나 적대적으로 대하는지, 그럼에도 태종이 아버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태종은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의 첫번째 세자였던 이복동생 이방석을 폐세자 시키고 죽입니다. 자신은 자식 없는 형의 아들이 되어 왕위를 잇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내세운 명분을 놓고 긴 시간 고심해야 했습니다. 세자인 첫째아들 양녕이 파행을 거듭했기 때문입니다. 세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공부는 뒷전이고 허구한 날 여자와 사냥에 빠집니다. 당연히 세자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태종은 아버지로서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폐세자를 결단하게 됩니다.   



4. 선생님께서 풀어 읽으신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과 그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즉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태종의 주변에는 내로라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 중 제일은 태종의 장자방 하윤일 것입니다. 또 ‘하윤’ 하면 바로 연상되는 인물이 정도전일 것입니다. 태조와 태종의 킹메이커였기에 이 두 사람은 항상 비교가 됩니다. 그런데 대중매체는 하윤에게 권력을 잡으려는 모사꾼의 이미지만을 강하게 덧씌웠습니다. 저 역시 하윤에 대해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태종실록』을 읽으면서 저는 ‘하윤’이라는 사람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되었고, 그의 행적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하윤은 여말 선초의 뛰어난 문인이자 학자이며 정치가입니다. 하윤과 태종은 첫 만남 이후 목숨을 걸고 권력의 소용돌이를 함께 헤쳐 나오고 평생 뜻을 같이 한 정치 파트너였습니다. 태종보다 스무 살 연상인 하윤은 이인임과 이색의 문하생으로 유학자적 자질과 정치적 강단을 갖춘 인물입니다. 태종이 태어나기 2년 전인 1365년(공민왕 14년) 19세에 과거에 급제해서 1367년(공민왕 16년) 춘추관원이 되었던 하윤은 유학뿐만 아니라 시문·음양·천문·지리·의술 등에 능통한 시대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하윤이 없었다면 태종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윤은 이방원이 왕으로 거듭나고 왕의 소명을 실천하는 데 있어 죽는 그 순간까지 힘을 다해 보좌한 인물입니다. 


태종의 시대는 곧 하윤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국정 전반에 걸쳐 하윤의 손을 거치지 않는 문제는 없었으니까요. 조선이라는 신생국의 기틀이 하윤을 통해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끊임없이 정책들을 구상하고 현실화시킵니다. 물론 많은 정책들이 장벽에 부딪히지만 그는 뚝심 있게 해결점을 찾습니다. 하윤은 70세가 되자 자진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선왕의 능침(陵寢)을 살피는 공무를 수행하러 함길도로 떠납니다. 태종은 노쇠한 몸으로 멀고 험한 길을 떠나는 하윤을 걱정하지만 믿고 맡길 이가 없어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왕명을 받드는 이 길에서 하윤은 병을 얻어 죽음을 맞게 됩니다. 태종은 조선의 철인(哲人)을 잃었다며 몹시 애통해합니다. 이렇게 ‘조선 최고의 행정가’ 하윤은 죽는 순간까지 태종의 사람이었고 조선과 함께한 인물이었습니다.



5. 마지막으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실록은 왕의 재위 기간의 역사를 날짜 순서에 따라 기록한 기록물입니다. 『태종실록』에는 600여 년 전의 하루하루가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실록은 문학작품이 아닙니다. 그러나 태종을 비롯한 신료들, 세자, 왕비, 사신들, 백성들 등 수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삶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이 글이 된 독특한 형태로 말입니다. 그 기록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서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기록은 또 한편의 이야기가 됩니다.


낭송의 묘미는 텍스트를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어 공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공명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이 풍성함은 『낭송 태종실록』을 매개로 해서 우리들을 600여 년 전 그들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합니다. 낭송을 통해 그들의 일상이 나의 일부가 되는 순간을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와 소통하는 것 아닐까요. 


또 실록을 읽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견해에 휘둘리며 살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흡사 누군가를 직접 만나고 겪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제3자의 의견에 따라 상대를 평가했던 것처럼 요. 이제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쌓여 역사를, 그 시대를, 그들을 보았는지 실감할 것입니다. 『낭송 태종실록』이 이런 선입견을 해체하고 새로운 역사와 만나는 통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