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따로 또 같이 쓰는 육아 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40대 중반, 만으로 마흔넷에 아기를 자연임신-(유도분만)자연분만 하고 육아에 들어선 엄마와 아홉 살 연하 아빠가 어느 날 찾아온 아기를 맞아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원했지만 정말 생길 줄은 몰랐던 아기를 함께 키우며 느끼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풀어 보려 합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엄마-아빠(여성 입장 –남성 입장)의 다른 시선을 볼 수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기가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그 아기를 함께 키운다 _ 엄마편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기쁜 일은 더 기뻐지고 슬픈 일은 더 슬퍼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포스가 함께하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다. _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마음산책, 2017), 247쪽
오늘은 우리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하고도 6일째 되는 날이다. 106일. 이제 갓 아기가 태어나 육아에 들어선 엄마들이나 임신 막달을 보내는 임산부에게 이 숫자는 어마어마해 보일 것이다(나도 그랬다). 시간과의 싸움―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일에 주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임신-출산-육아야말로 (느린) 시간과의 싸움이다. 입덧에 시달릴 때, 숨을 쉬기도 힘든 막달에, 아기를 낳으러 힘을 주는 순간에, 아기가 태어나 육아가 시작될 때, 그 순간순간은 너무 느리게 흘러가고 다음 단계로 얼른 옮겨 가고 싶은 마음은 그 순간을 더욱 더디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시간과의 싸움’은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임신-출산-육아는 ‘시간을 견디는 싸움’이다.
만 43세에 임신을 하고, 44세에 출산을 했다. 우연히,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아기였지만 기다리지 않았던 아기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반쯤은 포기하고 기다렸던 것도 잊고 있던 상태였다고 할까. 30대까지, 아니 마흔이 막 넘어서까지도 내가 아기를 갖고 싶어할 줄은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때때로 연애나 하면서 혼자 평온하게 사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노년 이전의) 모습이었다. 그 속에는 ‘결혼’도 ‘아이’도 없었다. 하지만 또 적극적으로 내가 ‘비혼’이나 ‘아기를 갖지 않겠다’라고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결심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가장 맞는 말일 것 같다. ‘결혼’도 ‘아이’도 생각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식상이 들어온 해여서 그랬는지) 2014년이 시작될 무렵에 문득 생리가 늦어졌고, 생리가 늦어지는 일은 나의 경우 초경 이래 계속되어 온 일로 하나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유독 ‘혹시 임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강하게 ‘임신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생각, 아니 감각이었다. 임신이면 좋겠다! 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키우고 지금 내 나이가 몇이고 이런 생각은 하나도 없이 그냥 감각적으로 다가온 느낌 같은 것이었다. 아기를 갖고 싶다.
사귀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도 아기를 원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임신이었으면 좋겠다’ 싶었을 때부터 아기는 나 혼자 키우는 걸로 생각했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친권 포기 각서는 받아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막상 임신일지도 모르겠다며 아기 얘기를 꺼냈더니, 아기에게 하나도 관심이 없어 보이던 그(지금의 애 아빠)가 “임신이면 좋겠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는 임신이 아니었지만, 그 일은 우리가 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아기를 갖자―하지만 이때 이 말에 담긴 건 아기를 ‘갖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해보자’는 것이라기보단 아기가 생기면 ‘함께 키운다’는 것이었다. 아기가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그 아기를 함께 키운다.
그리고 2년쯤 뒤, 아기를 갖고 싶다고 불현듯 선명하게 찾아왔던 그 감각도 옅어지고 희미해진 2016년의 늦여름에, 또 불현듯 이번에는 진짜 아기가 찾아왔다. 만 43세, 곧 만 44세가 되는 여름이었다. 그리고 2017년 4월 21일에 나는 유도분만-자연분만으로 임신 40주 1일에 3.75kg의 건강한 딸을 낳았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시작된 육아로,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몸의 온갖 역변을 겪었던 임신 때의 일과 출산일의 고통은 어느새 백만 년 전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감각―입덧 때문에 너무 괴로울 때 더디 흐르기만 하던 시간, 출산의 고통으로 몸을 뒤틀 때 기어가는 것 같던 시간, 아직 붓기도 채 빠지지 않은 우는 신생아를 안고 밤을 보낼 때 까마득하게만 보였던 50일 100일이라는 숫자―은 선명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누군가가 남긴 입덧 이야기, 출산 이야기, 육아 이야기 들을 보면서 위무를 받았던 일도 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닌, 사적인 기록을 공개적인 공간에 남기기로 마음을 먹는 데는 그 글들에 대한 고마움이 가장 컸다. 그 글들 덕분에 숱한 눈물의 밤을 위로받았다. 이제 써 나갈 우리의 글도, 입덧으로 만삭의 힘듦으로 출산으로 육아로 (행복하지만) 괴로운 (더딘)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의 눈물의 밤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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