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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24절기 이야기

춘분(春分)에 당신이 해야 할 일

by 북드라망 2012. 3. 20.
The 춘분, Reloaded 혹은 새로고침

김동철(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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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가수 비(Rain)의 절규처럼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사실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열나게 달려봐도 태양은 머리 위에서 꼿꼿이 내리쬐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햇볕, 즉 양기陽氣가 대세! 그 시절을 우리는 춘분春分이라 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진다. 낮이 본격적으로 길어진다는 얘기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때가 왔음을 의미한다. 포근함을 그저 반길지 모르나, 마냥 그렇게 받아들일 문제도 아니다. 따뜻해졌으니 더 이상 춥다는 핑계로 집안에 처박혀 있을 수 없다.

옛날 세시풍속에 ‘머슴날’이라고 있다. 춘분을 전후하여 집안 머슴들을 위해 축제 비스무레한 행사를 벌인다. 왠 머슴day? 춘분이 시작되면 햇볕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대세이고, 곧 밭일, 논일해야 하는 농번기가 성큼 왔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춘분=일하는 시간 Start인 셈이다. 자연의 리듬상 양기가 대세임은 움직이기 좋은 시절이 왔다는 신호이다. 춘분에는 그 동안 나올락말락 하던 새싹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쑥쑥 자라기 시작한다. 겨우내 집안에서 몸을 녹이던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니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새싹과 아이들도 이제는 활동하기에 적격인 시절이 왔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머슴day는 그런 시기가 도래했음을 기념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하는 때가 왔으니, 그전에 한번 배불리 먹고 마시며 한바탕 사기진작을 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곧 우리도 머슴같이 일하는 시절이 왔음을 알려준다. 덜덜..

연초까지만 해도 연말연시 분위기로 들썩이다 얼마 안지나 설날 명절로 또 푹 쉬었다. 이제 남은 게 없다! 몇 달 후 가을이 깊어질 무렵 맞이할 중추절仲秋節, 즉 추석 연휴만 목 빼고 기다릴 뿐.. 그러기엔 아직 멀었다. 게다가 추석을 즐겁게 보내려면 그 사이에 뭔가 수확을 해야 풍요롭게 지내지 않겠는가? 한해 농사 말아먹으면 명절이고 뭐고 없는 게다. 그냥 서로 마주보고 손가락 빨아야 한다. 이런 살풍경한 꼴을 보지 않으려면 머슴같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이 납득이 가시려는지.. 학생들은 학업, 직장인들은 업무를 평소 잘해놔야 나중에 일년 마감할 때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를 구슬프게 읊조리며 후회해도 늦는다. 머슴같이 우직하게 일하기 좋은 출발점이 바로 춘분임을 기억하시라. 그런데 이맘때쯤은 봄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바람이 쌀쌀맞게 불고, 기온이 널뛰기 타듯 오르락내리락한다. 봄을 샘내는 이런 ‘네가지’ 없는 꽃샘추위에게 한 소리 해야겠다. 도대체 왜! 세상은 양기가 지배한다고 해놓고 여전히 추운 것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우리에게 생소한 머슴의 날. 이날 젊은 머슴들은 100근이 넘는 돌을 들어올리는 체력테스트를 받았다. 이 테스트를 통과한 머슴들은 성인의 품삯을 받게 되었으니 일종의 성인식이었던 셈이다. 또 머슴날엔 머슴들이 돈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머슴전용시장까지 열렸다고 한다.


꽃샘추위의 시험

춘분은 농번기의 시작임에도 한편으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절이다. 이쯤 되면 헛갈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추운데 도대체 일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실제로 꽃샘추위가 한겨울만큼 추운지는 모르겠으나, 봄에 취해있다가 갑자기 뒤통수 맞은 격이니 그 충격이 적지 않으리라. 덕분에 양기가 대세라고 말했던 것이 졸지에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집밖으로 나왔다가 호된 추위에 당한 사람들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청하고, 옷장에 넣어둔 내복을 주섬주섬 꺼내는 등 과감히 역주행을 도모한다. ‘차 돌려!’ 여기서 우리는 꽃샘추위가 작동하는 의미를 찬찬히 헤아려 보아야 한다. 마치 샘나서 심술부리는 친구를 달래듯이 말이다. 무턱대고 꽃샘추위를 탓하면.. ‘아니 아니, 아니되오~’.

입춘에 봄을 생각하고, 우수에 마음을 녹이며, 경칩에 개구리처럼 튀어나갈 준비를 마친 후 봄의 출발선에 ‘요이땅’하고 서있는데, 난데없이 꽃샘추위가 들이닥친다. 아아.. 의혹이 생긴다. 아직 봄이 아닌가 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들이여, 내 말 좀 들어보소. 버스에 올라타 손잡이를 잡지 않고 방심하면, 갑자기 움직이는 차량 속에서 봉산 탈춤을 추게 마련이다. 버스 출발과 동시에 승객의 중심은 뒤쪽으로 확 쏠리나, 어쨌든 버스는 앞으로 나아간다. 일단 출발해 궤도에 오르면 중심은 이내 안정되고 이제야 룰루랄라 여행을 즐기게 된다. 중심이 뒤로 쏠린다고 ‘야~ 이 버스 왜 뒤로 가냐!?’ 할 사람은 없으리라.

꽃샘추위로 인해 내복과 목도리로 재무장하고 과거로 회귀하면, 이제까지 거쳐온 입춘 우수 경칩의 과정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셈이다. 좀 추우니까 움츠러들고, 좀 했으니 적당히 하지.. 그런 심리가 작심삼일을 부른다. 연초에 세운 파릇한 계획의 씨앗이 채 돋아나기도 전에 된서리를 맞을 위기이다. 게다가 춘곤증은 어찌나 심한지.. 이래저래 당신의 한 해 계획은 지금 위기다, 위기! 그렇기에 앞에서 한 말을 더욱 잊지 마라, 어쨌든 버스는 앞으로 출발하고 있으며, 양기가 대세大勢임을. 그까짓 추위는 곧 지나갈 찻잔 속의 미풍에 불과한걸!

양기가 대세인 시절에 꽃샘추위는 홀연히 나타나 사람들을 살살 꼬드겨 과거로 컴백하라고 부추긴다. 그럼 꽃샘추위는 나쁜 친구인가? 그렇지 않다. 꽃샘추위는 마음 속 저항감에 불과하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묘해서, 뭘 열심히 하다가도 그냥 적당히 하고 싶기도 하고 어떨 땐 확 놓아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또 쭈욱 한 길로 달려가는 게 사람 마음이다. 마치 버스가 출발할 때 덜컹거리다 고속도로 타면 씽씽 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꽃샘추위는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이며, 육상선수가 출발에 앞서 몸을 잔뜩 웅크리는 것과 같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시련을 이겨내면 뜻은 더욱 단단해진다. 꽃샘추위의 유혹 아니 시험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 어찌 그를 나쁜 친구라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좋은 스승이라 할만하다.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매일을 새롭게 하려면, 꽃샘추위의 시험을 잘 치러내야 한다. 그래야 청명, 곡우로 이어지는 만춘晩春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꽃샘추위의 시험은 무엇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꽃샘추위는 춘곤증을 불러온다. 잠은 몸이 좀 으슬으슬 춥다고 느껴질 때 쏟아진다. 꽃샘추위와 봄볕은 곤함을 불러오는 최상의 조합! 이때 봄철에 나는 냉이, 달래, 두릅 등의 나물들이 효과적이다. 음식을 먹는다고 함은 그것이 나고 자란 시공간을 먹는다는 의미다. 봄의 생동하는 기운이 담긴 나물들이 춘곤증을 물리칠 최고의 보약이라는 말이다.


봄을 맞이하는 관문, 갱신更新

꽃샘추위는 봄에 남아있는 음기陰氣의 끝자락이다. 아무리 양기가 대세라도 음기를 헌신짝 버리듯 몰아내면 몹쓸 일이다. 새집으로 이사 간다고, 살던 집을 막 다루면 새로 들어올 사람에게 못할 짓인 것처럼 말이다. 떠나는 음기를 고이 전송하고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하며, 맞이할 양기를 위해 주변 단장을 해야 한다. 이것이 꽃샘추위가 우리에게 내린 시험이다. 잘 보내야 잘 맞이할 수 있다. 어떻게 꽃샘추위를 잘 보낼 것인가? 묵힌 것을 떠나 보내야 새로운 것을 들일 수 있다. 그래야 하루하루를 끊임없이 새롭게, 즉 갱신할 수 있다. 갱신하려면 묵힌 것을 깨끗이 치워야 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꽃샘추위를 잘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청소이다. 춘곤증으로 졸리고 팔다리는 나른하며, 지금까지 해온 장밋빛 계획도 살짝 시들시들해진다. 좀 쉬어 볼까? 폼 잡고 있는데, 마침 날씨는 춥다. 아싸~ 집에서 뒹굴뒹굴 놀아야지! 좋은 핑계거리가 생겨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잘 개어 정리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청소를 해보자. 바깥이 춥다고 하지만 바람만 쌩쌩 일렁일 뿐이다. 오히려 환기가 잘되어 청소하기엔 안성맞춤이다. 더구나 몸을 일부러 움직여 구석구석 훑으니 졸리다가도 활력이 생긴다.

내가 사는 자취방에는 청소도구가 방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전부였는데, 이걸로 청소하는 게 영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몰아서 청소를 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집이 집 같지가 않았다. 안식과 피로회복의 장소이기보다, 그저 거쳐가는 정류장 마냥 잠만 자기 일쑤였다. 방에서 책을 읽는다든지 하는 것도 주변이 산만하니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노랑색 미니 진공청소기를 들여왔다. 허.. 내가 이전에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여겼으나 그것은 실로 잘못된 생각이었다. 진정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청소도구로다! 진공청소기로 방을 청소하며 덩달아 내 삶의 품격(?)은 올라갔다. 저녁에 말끔히 치워진 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마음마저 차분히 정돈되는 느낌이다.

매일매일 내려앉는 먼지처럼, 우리 마음과 일상에는 끊임없이 묵은 때가 낀다. 그것은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 미련, 후회일지도 모른다. 떠나 보내야 하는 데 여전히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연착된 기차마냥 승객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마음 속에 그러한 묵은 것, 집착執着으로 편치 않다면 지금 당장 진공청소기로 싹 치워버리자. 나처럼 오래 묵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바보 같은 일은 그만두시길! 그래야 우리 일상은 매일 새로고침, Reloaded 될 것이다. 치울 것은 방구석이 전부가 아니다. 수첩이나 노트에 빼곡히 적어둔 메모나, 배움터에서 받은 프린트 출력물, 집에 있는 컴퓨터 폴더와 파일도 정리해주자. 매일 쌓이는 먼지만큼 해로운 것은 소화되지 않은 정보와 지식이다. 그때그때 습득한 것을 정리해 분류해두면 그 자체로 사고가 명료해질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춘분엔 땅을 갈아엎는다. 춘분쯤에 땅을 갈아엎어놔야 본격적으로 물을 대고 농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것들, 묵은 것들을 털어내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갱신(更新)!


옛 선인들은 봄에 새로고침하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던 듯싶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경세유표經世遺表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월령月令에는,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에 도와 양을 동일하게, 형과 석을 고르게, 두와 통을 모나게, 권과 개를 바르게 한다.’고 했다.” 도량형 통일이라고 들어봤을 거다. 한마디로 길이, 무게 등 단위를 표준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춘분에 이러한 일을 했다고 하는데, 도량형 통일은 다름아닌 청소와 깊은 관계가 있다. 왠 도량형과 청소? 도량형 통일은 뒤죽박죽 정신 없는 단위를 하나로 설정해 혼란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청소 또한 복마전伏魔殿마냥 엉망인 내 주변과, 집착으로 묵은 때가 낀 내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 정돈하는 일이다. 아마도 옛 사람들 역시 춘분 즈음에 날도 별안간 추워지고, 마음이 산란해 그것을 다잡는 차원에서 도량형을 통일하지 않았을까? 그 진위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양기가 대세인 이 시점에, 봄을 영접하려면 묵혀 쌓인 것을 곱게 보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방법이 바로 청소인 셈이다, 땅땅!

※ 임진년 춘분의 절입시각은 3월 20일 오후 2시 10분입니다.
※ 계사년 춘분의 절입시각은 2월 20일 오후 8시 02분입니다.
※ 갑오년 춘분의 절입시각은 2월 21일 오전 1시 57분입니다.
※ 을미년 춘분의 절입시각은 2월 21일 오전 7시 45분입니다.
※ 병신년 춘분의 절입시각은 2월 20일 오후 1시 30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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