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누구든 ‘자기 삶의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

by 북드라망 2016. 6. 20.


“모든 팔자는 평등하다” 
― 혹은… 동안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



우주가 카오스인데, 어찌 사람이 모든 기운을 고루 갖출 수 있으랴. 한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팔자는 평등하다! 이것을 얻으면 저것이 부족하고, 저것을 얻으면 이것을 잃는다. 재능이 뛰어나면 공공의 표적이 되기 쉽고, 높이 오르면 져야 할 짐이 많다. 명리적 언어로 풀어 보면, 비겁이 많으면 자존감이 넘쳐 고립되고, 식상이 많으면 끼를 주체하지 못해 자폭하고, 재성이 과다하면 돈에 중독되고, 관성에 집착하다 보면 권력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또 인성의 늪에 빠지면 두 발로 서질 못한다. 이런 ‘생극제화’(生克制化)의 리듬이 인생이다. 여기에는 어떤 위계나 서열도 없다. 아울러 이 편향과 왜곡을 바로잡아 주는 제도나 시스템 따위는 없다. 하여 누구든 ‘자기 삶의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 태과불급의 속도를 스스로 조율하는! 
-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77쪽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여배우들 여섯 명이 본인을 연기하는 영화 <여배우들>(이재용 감독)을 보면 말미 부분쯤 여배우이기에 겪는 이런저런 부당한 일들과 어려움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때 윤여정 언니 한마디 하시길— 박수 갈채를 많이 받는 만큼, 그런 기쁨을 누리는 만큼 또 그런 어려움도 겪어야 하는 거다,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기억에 의존한 터라 대사 그대로는 아님;;) 역시! 이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 모두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고(물론 가장 좋은 사람은 윤여정님!! +_+),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연기인지 알 수 없는 수다들도 재밌었고 또 한 명도 이 영화를 보고 비호감이 된 사람은 없지만, ‘어른이구나’ 싶은 사람은 역시 단 한 사람, 윤여정뿐이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단순히 그녀의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삶에는 공짜가 없다’는 걸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에 위계는 없고, 인생에서 무언가를 누리면 꼭 치러야 하는 게 있고, 살아나가는 것— 그것밖에 없다는 걸 아는 사람. 

영화 <여배우들>의 윤여정은 ‘삶에는 공짜가 없다’는 걸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그런 사람을 볼 때가 있다. 외모, 집안, 재력, 직업, 가족— 무엇 하나 빠짐없이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 같은 사람. 저 사람도 삶에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싶은 사람. 이십대에 그런 사람을 봤다면 부럽거나 대단해 보였겠지만, 지금— 저이도 나름의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걸 혹은 겪을 거라는 걸 알게 된— 지금 그런 사람을 본다면 “사는 건 다 똑같구나” 할밖에.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여행을 함께 간 희자(김혜자 분)와 성재(주현 분)의 대화 중 살면서 가장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을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희자의 첫아이 얘기를 듣고 성재가 말한다.— “너무 고와서 별일없이 산 줄 알았다. 하기야 어느 인생도 만만한 인생은 없지.”

아주 예전에는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어떤 위계도 없는 팔자의 평등성’ 곧 ‘삶의 평등함’을 깨달아가는 배움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인생에도 힘듦과 기쁨이 번갈아 있다는 것, 위대한 인생도 초라한 인생도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알아가는 과정—그래서 어떤 결핍도 넘침도 스스로 조절하는 ‘자애’(自愛)의 기술을 발휘하는 과정이 노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어도 이런 배움이 잘 늘지 않는 듯하다. 다들 예전보다 열 살씩은 어려 보이게 된 얼굴 탓일까.

장수는 분명 축복이다. 한데, 우리시대는 그 기쁨을 누리기보다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노년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봄과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는 ‘금화교역’(金火交易: 우주의 대혁명)은 물론이고, 겨울을 장엄하게 맞이하는 ‘소멸의 지혜’가 부재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장수란 봄—여름—늦여름—늦늦여름, 다시 말해 청춘의 연장에 불과하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턴가 얼굴에서 나이가 사라져 버렸다. 20대와 40대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 아울러 정신연령도 한없이 낮아지고 있다. 마흔이 되어서도 엄마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쉰 이후에도 사춘기적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드러진 징표가 목소리다. 혀 짧은 소리에 옹알거리는 말투, 하트 뿅뿅으로 대변되는 유치한 표현들이 난무한다. 한마디로 어른이 없다! 
-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176쪽

그래서인지 젊은 사람들만 잔뜩 나오는 TV 속에서 오랜만에 '나이듦'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너무나 반갑다.

우리는 사오십대에도 이삼십대처럼 보이는 것만큼 정신 역시 자라지 않고 어린애에 머물게 된 것일까. 마음도 십대에 머물러 툭하면 상처받고 톡하면 화가 치솟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머물러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게 되어 버린 걸까. 외모 하나를 얻기 위해 ‘마음의 평안’과 ‘정신의 성숙’, ‘노년의 지혜’— 이런 것은 모두 헐값에 넘겨 버리고, 이삼십대의 얼굴로 외롭다, 힘들다…를 되뇌고 있다니. 이럴 수가!

결국 젊은 얼굴 뒤에 밀려오는 허탈함이나 박탈감, 우울함 그리고 어느덧 선뜻 다가와 버린 죽음을 마주하는 당혹감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기 위해서는 ‘소멸의 지혜’를 배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길에 때때로 동안의 유혹에 넘어가고, 쇼핑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에 빠지더라도, 다시, 가려던 길이 ‘지혜를’ 배우고 결국 나 스스로가 내 삶의 일정과 내용을 결정하는 ‘내 삶의 매니저’가 되려던 길임을 잊지 않는다면, 언제고 우리는 “다시 한번”을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언제건 배우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을 테니까. 


'내 삶의 매니저'가 될 수 있는 지혜를 배우려면~!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 10점
고미숙 지음/북드라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