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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네버엔딩스토리, 네버엔딩주역 - 화수미제

by 북드라망 2016. 4. 7.


네버엔딩스토리, 네버엔딩주역!

- 화수미제



드디어 주역 64괘의 마지막! 대망의 화수미제(火水未濟)다. 주역이라는 높고 광대한 산의 정상. 이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발아래 주역 64괘의 웅장한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질 줄 알았다. 한데 이게 웬걸? 운무가 낀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다.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고, 쉽사리 정복을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산맥 같은 주역. 이거야말로 주역의 매력이 아닐지. 공자님도 책을 잇는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주역을 보셨다고 하니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을까.


그렇게 어리둥절 서 있는 데 운무 사이로 한 갈래 길이 보인다. 또 다른 산봉우리와 계곡 사이로 면면히 이어져 있는 길. 정상에 도달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이다. 아니 여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새로운 시작이네?



괘사 : 형통한 때에 지켜야 할 도리 


未濟 亨 小狐 汔濟 濡其尾 无攸利

미제 형 소호 홀제 유기미 무유리 

미제는 형통하니, 작은 여우가 거의 건너서 그 꼬리를 적심이니,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 


미제(未濟)란 ‘아닐 미(未)’, ‘건널 제(濟)’로 건너지 못했다(완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반면 지난 시간에 살펴본 기제(旣濟)는 이미 건넜다(완성했다)는 뜻이다. 한데 한 눈에 봐도 순서가 이상하다. 원래 미제가 앞이고 다음이 기제 아닌가? 모든 일은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가는 게 순리지 않은가. 여기에 주역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주역이란 무엇인가? 천변만화하는 천지의 법칙을 담고 있는 책이다. 하여 주역의 순서는 자연의 순서와 함께 간다. 무슨 말이냐고? 자연의 순서를 살펴보자. 봄-여름-가을-겨울 여기서 끝인가? 무슨 큰일 날 소리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 이렇듯 자연에 완성(끝)은 없다, 오직 순환만 있을 뿐! 주역도 마찬가지다. 미제를 끝에 둠으로써 새로운 시작의 토대를 만들어 두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자 화수미제의 괘사를 보자. 일단 미제는 형통하다고 한다. 새로운 시작이니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창창하다. 그러니 형통할 수밖에. 그럼 작은 여우 이야기는 뭘까? 우리는 형통한 때를 만나면 무모한 도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도전의 말로는 결코 좋지 못하다. 작은 여우가 큰물을 건너려고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꼬리를 적시는 것처럼. 그러니 형통한 때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무모한 짓을 하지 말고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한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허튼 곳에 힘을 써서야 되겠는가? 



효사 : 화수미제의 여섯 가지 이야기 


初六 濡其尾 吝

초육 유기미 인

초육은 그 꼬리를 적심이니 인색하리라. 


앞서 본 괘사의 주인공 작은 여우가 바로 초육이다. 초육은 화수미제의 첫 번째 효다. 그러니 작고 어리다고 표현한 것이다. 작고 어린 여우는 아직 세상일에 서투르다. 이때는 겁 없이 나서지 말고 자중해야 한다.


象曰 濡其尾 亦不知極也

상왈 유기미 역부지 극야

상전에 이르길 유기미는 또한 알지 못함이 극함이라.


작은 여우가 물에 뛰어들어 꼬리를 적시는 것은 무지한 것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무지한 여우! 헉 남의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작고, 어리고, 무지한 여우는 겁 없이 나서지 말고 자중해야 한다.



九二 曳其輪 貞 吉

구이 예기륜 정 길 

구이는 그 수레를 당기면 바르게 해서 길하리라. 


구이는 초육에 비해서는 한 단계 성숙한 단계다. 하여 위험에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는 지혜가 있다. 효사에서는 그것을 수레를 당겼다고 표현한다. 위험으로 굴러가는 수레를 당겨서 바른데 두었다는 것이다.


象曰 九二貞吉 中以行正也

상왈 구이정길 중이행정야

상전에 이르길 구이정길은 중으로써 정을 행하기 때문이라.


구이가 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내괘(☵)의 중앙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六三 未濟 征 凶 利涉大川

육삼 미제 정 흉 이섭대천

육삼은 미제에 가면 흉하나, 대천을 건넘이 이로우리라.


드디어 때가 왔다. 육삼에서는 물을 건너야 한다. 이때가 아니면 영영 건너지 못한다. 그러니 처음에 위험에 뛰어들어 흉하지만 그 위험을 헤쳐 나가면 종국엔 이롭게 된다고 말한다.



물을 건너야 할 때가 왔다!



象曰 未濟征凶 位不當也

상왈 미제정흉 위부당야

상전에 이르길 미제정흉은 위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


육삼은 음이 양자리에 있어서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흉하다고 풀이한다. 


九四 貞 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 有賞于大國

구사 정 길 회망 전용벌귀방 삼년 유상우대국

움직여 귀방을 쳐서 3년에야 대국에서 상이 있도다.


구사 또한 양이 음자리에 앉아 있다. 부당한 자리. 앞서도 쭉 살펴봤지만 주역은 ‘자리’가 중요하다. 바른 자리에 있는지 아닌지가 그 ‘효’의 길흉을 결정한다. 한데 구사는 자리가 바르지 못하니 바르게 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바르게 하면 후회가 없어지는 거야 당연지사. 그럼 “귀방을 쳐서...” 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은 무엇일까? 귀방이란 귀신이나 오랑캐가 사는 방향.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악의 축이다. 미제괘에서는 위험에 뛰어들어서 화를 자초하는 초육이 그곳. 하여 구사는 초육을 쳐서 바르게 나아가도록 이끌고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상을 받는다.



귀방이란 귀신이나 오랑캐가 사는 방향,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악의 축이다.



象曰 貞吉悔亡 志行也

상왈 정길회망 지행야

상전에 이르길 정길회망은 뜻이 행해짐이라.


구사가 바르게 해서 후회가 없으니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六五 貞 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 吉

육오 정 길 무회 군자지광 유부 길 

육오는 바르게 하니라. 길하여 후회가 없으니. 군자의 빛이 믿음을 두니라. 길하리라.


육오는 군자의 자리. 하지만 육오 또한 자리가 부당하다. 그러니 바르게 하면 길하다고 재차 강조한다. 한데 육오는 외괘(☲)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연히 바르게 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자리가 효의 성향도 결정한다. 바른 군주는 자연히 바른 정치를 한다. 게다가 외괘는 이허중 불괘(☲)니 하늘에 뜬 태양처럼 백성들을 보살피는 군주가 바로 육오다.


象曰 君子之光 其暉 吉也

상왈 군자지광 기휘 길야

상전에 이르길 군자지광은 그 빛이 길함이라. 


육오의 때는 그야말로 태양과 같은 군주의 화려한 치세다. 어찌 길하지 않겠는가.



태양처럼 백성들을 보살피는 군주~ 오 눈부셔!



上六 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 失是

상육 유부우음주 무구 유기수 유부 실시

상구는 믿음을 두고,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거니와 그 머리까지 적시면 믿음을 두는데 옳은 것을 잃으리라. 


화수미제의 마지막 효이자, 주역 384효의 끝에 위치한 상육이다. 대개의 상육이 그렇듯 미제의 상육도 좋지 못하다. 대망의 라스트 효라도 별수 없다. 상육은 술을 머리가 술독에 빠지도록 마셔서 믿음을 잃었다. 자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졌으니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上曰 飮酒濡首 亦不知節也

상왈 음주유수 역부지절야

상전에 이르길 음주유수가 또한 절(節)을 알지 못함이라.


술독에 머리가 빠지도록 술을 마신다는 건 주역에서 중히 여기는 절도를 잃은 것이다.


자 이렇게 주역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인 화수미제를 살펴봤다. 그럼 다음 행로는? 다시 중천건이다. 또다시 반복하다니 지루하지 않겠냐고? 단언컨대 아니라고 확언한다. 매년 맞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지루하고 진부하지 않은 것처럼. 다시 보는 중천건에서는 새로운 중천건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주역서당>의 지난 연재물들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시라. 우리 <주역서당> 팀도 다시 읽고 고치며 주역의 새로운 맛에 취해볼까 한다.(광고 : 아직 끝이 아니다. 다음 시간 주역 64괘의 한마디를 매듭짓는 에필로그가 있으니 기대하시라.) 



글_곰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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