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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혁명의 계절에 듣는 주역의 지혜 - 택화혁

by 북드라망 2015. 8. 27.


택화혁, 혁명의 계절에 듣는 주역의 지혜



지난 23일, 가을의 두 번째 절기인 처서가 지났다. 아직 낮은 무덥지만 아침과 저녁은 제법 쌀쌀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제는 새벽에 이불을 덮지 않으면 춥다.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더니 여름내 단잠을 방해하던 모기도 처서가 지나자 급격히 쇠약(?)해진 모습이다. 이런 작은 변화의 기미들이 하나둘 보이는 지금 우주는 대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여름의 작열하던 화기가 가을의 서슬 퍼런 금기에 제압당하는 때가 바로 이때다. 계절을 오행으로 풀어보면 봄은 목(木), 여름은 화(火), 가을은 금(金), 겨울은 수(水)다. 이 사계를 매개해주는 환절기를 토(土)라고 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목에서 화로 가는 단계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목의 생장하는 기운과 화의 발산하는 기운은 힘의 벡터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름의 화기운이 가을의 금기운으로 전환될 때다. 우주는 균형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여름의 화기운이 절정에 달하면 가을의 금기운으로 극(劇)한다.


물론 여름의 화기운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화기와 금기는 엎치락뒤치락하며 세 번 결투를 벌이는데 그게 우리가 ‘보양식 먹는 날’로 알고 있는 초복, 중복, 말복이다. 초복과 중복에서 연전승을 하던 화기운은 말복에 이르러 금기운에 제압당한다. 무엇이든 절정에 달하면 쇠퇴하는 법.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화기도 절기(때)가 변하면 그 기세가 누그러진다.


여름의 작열하던 화기가 가을의 서슬 퍼런 금기에 제압당하는 때가 왔다.



천지를 주도하는 기운이 달라짐에 따라 만물도 극심한 변화를 겪는다. 봄·여름 동안 밖으로 발산하던 기운을 가을이 되면 안으로 수렴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하게 떨구고 결과물(열매)을 맺기 위해 온 힘을 집중한다. 인간세에서도 변화의 진폭이 큰 시기가 바로 이때다. 온갖 사건‧사고들이 뻥뻥 터져서 수습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우주의 대변화를 전문용어로 ‘금화교역(金火交易)’이라 한다. 이 시기에는 지금과는 전연 상반된 방향으로 기운이 흘러가기 때문에 변화도 그냥 변화가 아니라 대변화다. 그래서 금화교역을 달리 ‘우주의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천지자연의 변화를 담은 주역에는 당연히 금화교역의 이치를 담은 괘가 있다. 바로 택화혁(澤火革) 괘다. 오늘 <주역서당>에서는 택화혁 괘를 공부하면서 변화의 시기에 알맞은 지혜를 살펴보려고 한다.



택화혁 괘사 - 혁명의 때를 기다려라!


革은 已日이라야 乃孚하라니 元亨코 利貞하야 悔 亡하니라.

(혁은 이월이라야 내부하라니 원형코 이정하야 회 망하니라.)

혁은 이미 날이라야(날이 차야, 즉 때가 되어야) 이에 믿으리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워서 뉘우침이 없느니라.


괘상(모양)을 통해서 택화혁을 살펴보도록 하자. 택은 연못이고, 화는 불이다. 그러니까 택화혁은 위에 있는 못물이 흘러서 아래에 있는 불을 끄고, 아래에 있는 불은 위에 있는 못물을 졸이는 형상이다. 이렇듯 위아래가 부조화할 때 변화가 필요하다. 한데 이때 변화는 단순히 일부분을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아래위가 꽉 막힌 상태이니만큼 근본부터 다 바꿔야 한다. 그래서 괘명(괘 이름)에 ‘혁명’을 뜻하는 ‘혁’자가 붙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 때나 혁명을 할 수는 없다. 혁명의 그 날을 기다려야 한다. 바야흐로 민심에 불이 붙고 때가 이른 날 잘못된 폐단을 바로잡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러면 크게 형통하고, 바르고, 이로워서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폭군의 폭정으로 백성들의 원망이 천지를 뒤덮을 때, 새로이 천명을 받은 자가 나타나 폭군을 몰아내고 천하를 다스리는데 이것이 인간사에서 볼 수 있는 택화혁의 원리다.



택화혁 효사 - 혁명에 대처하는 여섯 가지 자세


初九는 鞏用黃牛之革이니라.

(초구는 공용황우지혁이니라.)

초구는 굳게 누런 소의 가죽을 쓰느니라.


굳을 공(鞏)


초구는 택화혁의 가장 아래에 있다. 택화혁은 ‘혁명’을 말하는 괘지만 초구는 위치상 혁명을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다. 하여 괜히 나서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초구에서는 이것을 황소의 누런 가죽을 쓴다는 재밌는 말로 표현했다. 이는 질기고 단단한 황소의 가죽을 쓴 것처럼, 혁명으로 불붙은 마음을 다잡고 엎드려있으라는 말이다.


六二는 已日이어야 乃革之니 征이면 吉하야 无咎하리라.

(육이는 이일이어야 내혁지니 정이면 길하야 무구하리라.)

육이는 이미 날이어야(날이 차야, 즉 시기가 무르익어야) 이에 고치니, 가면 길해서 허물이 없으리라.


앞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주역의 효사는 ‘자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길한 자리’는 크게 두 가지로 결정된다. 음양에 합당한가(1효-양, 2효-음, 3효-양, 4효-음, 5효-양, 6효-음), 중앙에 위치하였는가. 택화혁의 육이효 두 가지 사항을 모두 만족한 ‘길한 자리’다. 음이 음의 자리에 있는 데다가 내괘의 중앙이기 때문이다. 이걸 정중(正中)한 자리라고 한다. 혁명을 말하는 이 괘에서 정중한 자리에 처했다는 건 달리 말해 혁명의 때를 만났다는 말이다. 고로 혁명을 실천하여 잘못된 폐습을 고치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황소의 가죽을 쓰고 기다려라. 그러면 혁명의 때가 나타난다.



九三은 征이면 凶하니 貞厲할지니 革言이 三就면 有孚리라.

(구삼은 정이면 흉하니 정려할지니 혁언이 삼취면 유부리라.)

구삼은 가면 흉하니 바르게 하고 위태하게 할 것이니, 고친다는 말이 세 번 나아가면 미더움이 있으리라. 


주역의 효들은 전근대의 신분 질서로도 풀이된다. 초구는 백성, 이효는 초야의 신하, 삼효는 외직에 있는 신하, 구사는 조정에 있는 신하, 구오는 임금, 상효는 왕위에서 물러난 상왕이다. 구삼은 외직에 있는 신하로 육이 임금을 위해 변방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그런데 욕심을 품고 임금을 해하려고 반역을 일으키면 흉하다. 고로 구삼은 항상 자기 본분을 지키면서 행동과 마음가짐을 바르고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한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어떻게 해야 본분을 지키고 심신을 바르고 조심스럽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주역에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고치려고 할 때 마음대로 하지 말고 주위 사람들에게 세 번을 물어보라고 한다. 세 번 물어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실행해야 자신의 결정에 믿을 수 있으니까.


九四는 悔亡하니 有孚면 改命하야 吉하리라.

(구사는 회망하니 유부면 개명하야 길하리라.)

구사는 뉘우침이 없어지니, 믿음을 두면 명을 고쳐서 길하리라.


구사는 내괘인 이허중 불괘(☲)에서 외괘인 태상절 못괘(☱)로 넘어간 자리다. 여기서 육이에서 시작된 혁명이 한번 매듭지어진다. 내괘에서 모든 폐단을 몰아내고 변혁했기 때문에 아무런 뉘우침도 후회도 없다고 말한다. ‘혁명’은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 내괘(육이, 구삼)가 흉한 것을 몰아내는 ‘혁’의 단계라면, 구사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내놓는 ‘명’의 단계다. 이 두 가지가 온전히 이루어져야 혁명이 완성되는데 구사가 바로 그러한 단계다. 이때는 혁명이 실패할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 길하다.


구사, 육이에서 시작된 혁명을 한번 매듭짓는 단계



九五는 大人이 虎變이니 未占에 有孚니라.

(구오는 대인이 변호이니 미점에 유부니라.)

구오는 대인이 범으로 변하니, 점을 하지 아니함에 미더움이 있느니라.


구오는 양이 양자리에 바르게 있고 외괘에서 중을 얻어 중정한 대인(임금)이다. 한데 이 대인이 범으로 변한다고 한다. 갑자기 웬 둔갑술? 뜻을 풀어보면 대인은 혁명을 하는 데 있어 호랑이처럼 강한 기세로 악습의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혁명이란 일부분만 수정하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혁명에 성공하면 굳이 점을 보지 않더라도 좋은 세상이 열린다는 걸 알 수 있다.


上六은 君子는 豹變이요. 小人은 革面이니 征이면 凶코 居貞이면 吉하리라.

(상육은 군자는 표변이요. 소인은 혁면이니 정이면 흉코 거정이면 길하리라.)

상육은 군자는 표범으로 변하고, 소인은 낯만 고치니 가면 흉하고 바른 데 거하면 길하리라.


표범 표(豹), 낯 면(面)


택화혁의 마지막 효인 상육은 혁명이 끝난 상황이다. 구오에서는 군자(임금)를 호랑이라고 표현했는데 상육에서는 표범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상육이 ‘임금’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이런 세심한 구분!) 상육은 혁명 이후의 군자와 소인에 행동에 대해 말한다. 소인들은 군자가 혁명으로 이뤄놓은 세상에서 겉으로는 폐습을 고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역심을 품고 있다. 그렇다고 군자가 ‘호랑이 기운’으로 소인을 벌해서는 안 된다. 이제 갓 혁명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시기에 소인들을 충동질하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군자는 자신의 행실을 바르게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잘 다스리면 된다. 그러면 소인들도 점차 군자를 본받게 되므로 길하다.


대인이 범으로 변하고, 군자가 표범으로 변한다고?!



자 택화혁의 여섯 효를 정리해보자. 초구는 혁명의 때를 기다리며 엎드려 있어야 한다. 육이는 때가 도래했기 때문에 혁명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구삼은 무엇이든 심사숙고해야 한다. 구사는 ‘혁’의 단계를 잘 갈무리하고 ‘명’의 단계를 잘 전개해야 한다. 육오는 혁명의 책임자인 임금으로 폐습의 뿌리까지 뽑아내는 ‘호랑이 기운’이 필요하다. 상효는 혁명으로 만든 새로운 세상을 부지런히 다스려서 겉만 따르는 소인을 경계해야 한다.


자 우리는 지금 우주에 혁명이 벌어지는 시기를 살고 있다. 이 변화무쌍한 때를 통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역이 전해주는 지혜는 이것이다.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를 잘 살펴라! 그리고 변화를 전개하고 있다면 자신의 행실을 바르게 다잡아라! 우리는 이미 혁명의 막바지에 왔다. 곧 겨울이 온다.


글_곰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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